與, 비판·이견 실종…이해찬 목소리밖에 안들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최대한 늦췄다. 그리고 최소한으로 발언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이다. 잡음을 경계하고 일사분란함만 강조하는 당 지도부 때문에 여러 현안이 터질 때마다 당 내 다양한 의견이 쉽게 표출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전날 “민주당 대표로 통절한 사과를 말씀드린다”며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지 6일 만이다. 이마저도 수석 대변인을 통한 ‘대리 사과’ 비판이 커진 이후 나온 것이어서 등 떠밀려 사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사이 대부분의 의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민주당은 고인에 대한 예를 이유로 내세웠다. 이 대표는 장례 기간 중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XX 자식”이라며 욕설로 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여성 의원들은 더욱 말을 아꼈다. 일부 의원들은 아예 기자들의 연락을 거부하기도 했다. 여성 의원들은 박 전 시장의 사망 닷새 만인 전날 서울시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냈지만 이마저도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나온 것이었다. 21대 국회의 여성의원의 절반(28명)이 소속된 당이라고 하기엔 무색했다.

당권주자 역시 말을 아꼈다. 이낙연 의원은 이 대표의 공식 사과가 나온 뒤에야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를 호소하시는 고소인의 말씀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뒤늦게 입을 열었다. 김부겸 전 의원은 10일 라디오에서 “(성추행 의혹은) 고인의 명예와 관련된 부분이라 제가 말을 덧붙이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민주당의 집단적으로 말을 아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이 대표는 오 전 시장의 사퇴 나흘 만에 “당 대표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의원들은 입을 최대한 다물었다.

지난 5월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휩싸였을 때도 민주당 의원들은 “아는 게 없다”며 답변을 피하거나 윤 의원을 옹호하기 바빴다. 이 대표가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기자회견 20일 만에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방어 태세를 갖추자 의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입만 쳐다보며 여론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대다수가 이견을 내는데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라 고 했다. 한 범여권 의원도 “일부 여당 의원들이 평소 ‘당에서 너무 입조심을 시킨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민주당의 당 대표가 처음으로 임기를 채우고, 같은 당명으로 두 번의 총선을 치렀다는 것은 당이 ‘일사분란’하게 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당 내 다양한 목소리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꺾어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정당은 사회적 갈등을 대변해야 하는데, 이런 측면에선 민주당이 당 내 민주화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정·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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