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성추행 피해자 수치심 못 느꼈어도 처벌”

지하철 성추행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더라도, 공중밀집장소 추행죄 처벌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공중밀집장소 추행 혐의로 기소된 박모 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일반 형법상에도 강제추행죄가 있지만 성폭력처벌법상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을 처벌하는 조항을 둔 입법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하철처럼 추행 장소가 공개돼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회피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유형력 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따지면 처벌이 어려워질 수 있는데, 이 같은 공백을 막기 위한 입법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추행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 행위,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며 “(추행) 대상자가 성적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반드시 실제로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지난 2014년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한 여성에게 자신의 몸을 붙여 추행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재판에서 몸이 밀착되긴 했지만 추행의 고의가 없었고, 피해자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심은 “박씨가 피해자를 추행할 의도로 몸을 밀착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도 “피해자가 박씨의 추행 사실 자체를 몰랐다면 피해자의 성적 자유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고, 박씨가 추행 의도로 같은 행위를 했다 해도 그것만으로 추행이 기수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박씨의 행위는 이미 성폭력처벌법상 공중밀집장소 추행죄 기수에 이르렀고, 비록 피해자가 실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간과 추행의 죄는 성적 명예나 주관적 감정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성적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범죄”라며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이 발생하지 않았어도 성행위로부터의 소극적 자유는 이미 침해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안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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