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블랙리스트 넘어 연극계 생태계 대수술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심재찬 연극의해 집행위원장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미투, 블랙리스트 파문 등 다사다난한 몇 년을 보낸 연극계가 ‘2020 연극의 해’를 맞아 대수술에 들어간다. 29년 만에 지정된 ‘연극의 해’를 통해 보다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심재찬 ‘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장은 사무국은 최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극의 해를 맞아 연극 예술이 나아갈 방향과 공연계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공감했다”며 “‘안전한 창작환경,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 관객 소통의 다변화’라는 3가지 목표에 따른 14가지 사업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0 연극의 해’는 지난 몇 년 사이 불거진 미투와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으며 위축된 연극계를 지원하기 위해 지정됐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 연극의 해’를 지정, 21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위원회가 향후 1년간 실행할 연극계 장단기 발전 계획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연극의 해’는 진작부터 지정됐으나 사업 추진이 늦어진 것은 올 한 해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닥치면서다. 연극계에선 ‘연극의 해’ 사업 필요성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한국연극협회는 앞서 지난 2월 연극의 해 예산 21억원을 연극계의 피해 복구에 지원해줄 것을 제안했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문을 닫고, 공연이 올라가지 못하며 연극계는 사상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연합]

2020년이 절반이 지나간 시점에서 가지게 된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에서 심 집행위원장은 “축제처럼 들썩이는 행사보다 건강한 공연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연극의 해’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방지영 부위원장도 “연극은 현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며 “저희가 튼튼해질 때 관객에게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극의 해’를 우리 스스로를 비추고 정돈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집행위는 ‘안전한 창작환경’을 목표로 일종의 콜센터인 ‘연극인공감 120’을 설립, 현실적인 복지증진과 연극인들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들어보고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또 전국 연극창작환경 실태조사와 공연예술인들의 예술노동에 대한 ‘공정보상’ 체계를 위한 기초연구가 추진된다. 연극계의 ‘미투’(Me Too) 이후 차별과 폭력 없는 안전한 창작환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위계적인 문화를 개선하는 자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전국 워크숍도 이뤄진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국 청년 연극인 네트워크 구축과 전국 연극인 젠더 감수성 워크숍 등 사회적 담론을 다루는 사업이 진행된다.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란 화두를 앞세워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개선을 논의하는 워크숍들을 개최한다. 연극계의 불규칙한 구인·구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플랫폼인 ‘연극인 일자리 매칭 앱’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2020 연극의 해’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대면과 비대면으로 연극을 만날 수 있는 사업도 준비한다. ‘언도큐멘타’는 극장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이 사업은 연극계 역사 전체를 재조명하며 연극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작품들에서 발췌된 장면들로 구성된 갈라 작품 공연이다. 192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연극 역사 안에서 배제됐던 사각지대를 통해 연극의 역사를 재방문하고, 연극의 역사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10월 마지막 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3일간 공연된다.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연합]

총 14개의 사업에 동원되는 연극인은 무려 500명 가까이 된다. 심 위원장은 “이번에 진행할 다양한 사업들은 우리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연극계의 움직임이 있었고, 이러한 움직임을 모아 공론의 장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캠페인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극단 ‘콜렉티브 뒹굴‘의 대표인 성지수 집행위원은 “14개의 사업을 세우며 연극계에서 배제된 목소리를 돌아보자는 의미가 컸다”라며 “이미 발생되고 있던 자발적 움직임과 당사자성을 지닌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우리의 문제를 짚어나가고 이것들을 현장과 제도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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