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집이 뭐길래

“초록에 굶주린 몸이 도서관을 나온다. /시 따위는 읽고 쓰지 않아도 좋으니/시원하게 트인, 푸른 것들이 보이는/ 자그만 창문을 갖고 싶다/

담쟁이넝쿨처럼 얽힌 절망과 희망을 색칠할.” (최영미 시 ‘꿈의 창문’ 부분)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수록된 이 시를 발표할 때 나는 서울 강북의 어느 월셋방에 살고 있었다. 작년 가을 경기도의 신도시에 내 집을 장만한 뒤부터 나는 초록에 굶주리기는커녕 날마다 싱그러운 초록을 포식하며 살고 있다.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과일 몇 쪽을 내놓고 집들이를 하던 날, 나의 작은 아파트를 구경하며 집이 예쁘다고 칭찬하는 친구들에게 베란다를 가리키며 나는 자랑했다. “저기 산이 보여.” 내가 새로 이사한 고양시의 아파트는 전망이 탁 트이지는 않았으나 멀리 야산도 찔끔 보이고, 베란다 창밖에 이파리가 넓은 가로수들이 마치 내 집 앞의 정원처럼 쫙- 펼쳐져 보기 좋았다.

“그래. 이제 푸른 것들이 보이는 창문을 가졌네.” 내가 쓴 시를 기억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으쓱 행복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내가 목을 매던 전망도 하루 이틀… 열 달쯤 지나니 별것 아닌 풍경이 되었다. 이사한 직후엔 아침마다 베란다를 향해 서서 막대봉체조를 하며 내 눈에 들어오는 푸른 것들에 감격해 거의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

집이 그렇게 크거나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하루의 피곤을 풀 쉼터로 기능하면 충분하지 않나. 요즘 불거진 한국사회의 고질병, 부동산 급등사태를 보며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집 사길 잘했다, 싶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하다. 작년에 내 집을 장만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씁쓸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을 텐데.

주택은 물건이 아니라 천부인권이다. 인간이면, 아니 동물이라도 누구나 편히 쉴 권리가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인 휴식, 그 휴식의 공간을 갖고 팔고 사며 장난치는 인간들. 부동산투기를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고위공직자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부동산투기와 성범죄만은 내가 참지 못한다.

21세기 한국의 위상이 아무리 높아져도,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진국이다. 토지공개념을 적극 도입하기 바라며, 정부청사와 국회도 지방으로 이전하면 좋겠다. 서울 도처에 널린 공공기관 건물들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를 리모델링해 서민을 위한 장기임대주택과 도서관 등 문화시설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장기임대주택과 도서관, 동네책방, 스포츠센터 그리고 공원을 결합한 일종의 문화벨트를 만들면 어떨까. 나처럼 사무실이 없어 고생하는 1인 출판사 대표에게 일할 공간도 제공하고, 거기서 책도 팔고 강의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의 나래를 편다. 시멘트 냄새 날리며 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짓지 말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바란다. 그럼 일자리도 새로 생기고 주택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고,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도시문화도 풍부해질 것이다. 시인이며 출판사 대표인 아무개의 참견을 귀담아 들을 이가 있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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