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식품의 왕’ 김치로 사업 일구는 파란눈의 젊은이들

프랑스 에스플레트고추를 사용한레자르크뤼의 김치 제품

김치 사업에 파란 눈의 젊은이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해외의 젊은 스타트업체들이 현지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고 이를 판매하는 중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마늘과 젓갈 맛의 새빨간 전통 김치는 아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사업가들은 현지 취향에 맞춰 색다른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아예 배추가 없거나 젓갈이 사라지고, 빨간 고추 대신 노란색 강황이 들어간 ‘골든 김치’도 등장했다. 김치찌개에나 들어가던 김치 국물은 건강음료나 음식 소스로 이용되는 ‘김치주스’로 재탄생됐다. 활용 능력도 놀랍다. 토스트나 카나페나 가츠파초 등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서양 음식에 사용되며 제법 잘 어울리는 맛도 과시한다.

▶유기농·값비싼 양념·고급 패키징…김치의 프리미엄화=해외 스타트업들이 김치 산업에 뛰어든 배경에는 김치의 인기 상승이 있다. 팬데믹 여파에서도 김치의 선전은 눈부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김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3% 증가한 7500만 달러(한화 약 902억 원)를 기록하며 신선농산물의 수출을 이끌어냈다. 사실 김치는 몇년 전부터 전 세계에 불어닥친 매운 맛 열풍과 이국적 식품, 발효식품 트렌드를 통해 주가가 상승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유럽 젊은층이 주도하는 스타트업들이 김치 사업을 시작한 경우도 많아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에 따르면 영국의 러빙푸즈(Loving Foods), 이튼얼라이브(Eaten Alive), 프랑스의 레자르크뤼(Les jarres crues), 독일의 컴플리트오가닉스(completeorganics) 등 유럽 발효식품 전문업체들이 대표 적이다.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같지만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김치는 한국의 전통 김치와는 차이가 있다. 먼저 고급화·프리미엄 라인의 개발이 두드러진다. 러빙푸즈의 경우, 유기농 농산물과 켈트해 소금등 값비싼 식재료를 사용한다. 유럽은 1인당 유기농 소비량이 세계 최고(세계유기농운동연맹, IFOAM)인 지역으로 김치 역시 프리미엄급 유기농과 비건식품을 표방하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생산한 김치들은 주로 유기농식품 매장을 통해 유통되며 가격은 1㎏당 18유로(약 2만 4300원) 선으로 현지내 한국산 김치의 평균가를 크게 웃돈다.

▶ ‘맵지 않아요’ 단계별 맛·새로운 식재료와의 결합=현지에서는 매운 맛도 달라진다. 해당 업체들은 단계별로 매운 맛을 조절하거나 아예 새로운 식재료로 김치를 만들고 있다. 이튼얼라이브는 네 가지 맛(매운 김치, 순한 김치, 양배추 김치, 골든 김치)으로 김치 제품을 구성했다. 그 중에서 이름도 인상적인 ‘골든 김치’(Golden kimchi)는 말 그대로 노란색 김치다. 고춧가루 대신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강황과 함께 레몬, 생강을 넣어 만들었다. 독일 발효식품인 사우어크라우트(양배추절임)처럼 유럽인이 쉽게 접근하면서도 발효식품의 건강함에 주목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한국의 매운 고추대신 프랑스산 고추를 이용한 경우도 있다. 레자르크뤼는 프랑스의 순한 에스플레트고추를 넣었으며, 유럽인이 부담스러워하는 마늘과 젓갈도 제외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치는 이름도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나는 ‘보르도산 신(新)김치(Néo-Kimchi)이다.

채소 절임에 가까운 제품도 있다. 컴플리트오가닉스의 세 가지 김치 제품(신(新)김치, 무김치, 꾸르띠도 김치)들은 모두 고춧가루를 매우 적게 사용했다. 마치 엘살바도르식 양배추 절임과 비슷하다.

아예 배추 대신 양배추와 당근만으로 김치를 만들기도 한다. 러빙푸즈 라인 중에는 양배추와 당근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강황과 후추를 넣은 ’강황 후추 김치‘가 있다. 또한 훈제 파프리카 (smoked paprika)에 카옌 후추(생칠리를 말린 후 가루로 만든 향신료)를 넣은 ’핫 앤 스모키 김치‘도 개발했다.

뉴질랜드에서도 현지화된 퓨전 김치가 판매중이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절임채소류 전문 기업인 리빙굿니스(Living Goodness)는 현지 생산 채소와 고추 소스, 그리고 한국의 김치발효법을 결합한 퓨전스타일 김치를 만들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카운트다운과 유기농식품 판매점인 허클베리에서도 뉴질랜드에서 제조된 김치가 판매중이다.

▶김치주스는 요리에 넣는 ‘새로운 소스’=김치 국물 역시 새롭다. 현지에서는 음식의 이국적 맛을 높이는 ’음식 소스‘로 제품이 출시된다. 마치 우리가 굴소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와 동시에 유럽과 미국에서는 매일 조금씩 마시는 건강발효 음료로도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도 먹을 수 있다‘ =현지인의 시각에서 나온 김치의 어울림은 분명 우리의 생각보다 넓었다. 김치 아보카도 토스트나 김치 피자, 김치 샐러드, 김치 카나페, 김치 가스파초, 김치 스튜 등 김치는 얼마든지 새로운 음식과 콜라보가 가능했다. 유럽의 일부 김치 제조업체들은 ‘흥미롭게 먹을 수 있는 김치 요리법’이라는 홈페이지 카테고리를 통해 다양한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나 홍콩에서는 샐러드 메뉴에 사용된 김치가 주목받고 있다. 홍콩의 채식 음식 전문점 트리하우스(Tree house)에서는 김치를 토핑으로 올린 샐러드 메뉴가 인기리에 판매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김치가 글로벌 푸드로 대중화되려면 세계적 흐름에 따른 변화도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aT 뉴질랜드 보고서(2019)에 따르면 한국 김치의 인지도는 높지만 매운 맛은 아직도 현지인에게 낯설며, 많은 서양인들은 매운 맛을 일종의 통증으로 인식하고 있다. aT 파리지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발효식품 트렌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유럽의 김치 현지화 트렌드는 한국 김치가 유럽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고 분석했다. 육성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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