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주의 현장에서] ‘폐지 논란’ 여가부가 가야 할 길

“여전히 피해자가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없는 현실을 확인했다.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을 느낀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7일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에서 한 말이다. 여가부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의혹이 불거진 뒤 닷새 만인 지난 14일 첫 입장발표를 통해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지칭해 논란이 됐다. 이어 16일에 다시 박 전 시장의 전직 비서인 고소인 A씨는 법상 ‘피해자’가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가부는 28일부터 이틀간 서울시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서울시의 여성폭력 방지 조치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이 장관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 이어진 권력형 성폭력사건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로 폭로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때문이다.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그 뒤에도 권력형 성폭력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를 보완할 만한 제도적인 장치도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여전히 미흡하다. 이번에 A씨에 대한 2차 가해는 더욱 심한 모양새다.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란 생소한 용어도 사용됐다. 그것도 서울시를 비롯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사회 고위층 내지 진보 지식인들이 대놓고 사용했다.

여가부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성평등 정책을 펴야 할 주무부처이지만, 정부와 여당의 눈치를 보느라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5월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횡령 의혹 등을 폭로했지만, 정의연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이 장관은 2003년부터 윤미향 당시 정대협(정의연의 전신) 사무총장과 친분을 맺어왔고, 박 전 시장이 설립을 주도한 참여연대에서 국제인권센터 부소장과 소장을 지냈다.

급기야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은 등록된지 나흘 만에 10만명을 돌파했다. 세금 낭비만 하는 여가부를 없애라는 주장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담당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거센 질타다.

지난 2001년 ‘여성부’로 탄생한 여가부는 내년에 만 20주년을 맞는다. 여가부는 “지자체장이 가해자인 경우 등을 포함해, 관련 대책을 수립 중이며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했다.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여가부가 존재 이유를 입증하려면, “피해자가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있는 현실”이 되도록 바꾸는 것이 그 첫 번째 순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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