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공연, 그 이상…클래식 공연의 진화

지난 25일 열린 평찬대관령음악제의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선 오케스트라가 객석으로 내려와 베토벤의 ‘전원’을 연주했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케스트라가 관객에게 무대를 양보했다. 단원들이 객석의 일부에 자리를 잡자, 무대 위는 관객 40여명의 차지가 됐다. 연주회는 무대 위아래로 위치한 관객들이 오케스트라를 360도로 둘러싼 채 진행됐다. 1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뮤직텐트에 수용한 관객은 총 400여명. 지난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선 아주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개막 무대인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의 ‘전원’이었다.

객석은 이날의 무대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무대 위를 바라보고 앉아 일방적으로 보고 들었던 클래식 공연은 오케스트라의 위치 변화로 이전과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손열음 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감독은 “‘전원’은 베토벤이 자연에서 받은 영감들, 자연의 소리와 울림들이 음악에 잘 담겨 있다”며 “음악이라는 것, 소리라는 것은 공기, 공기 속에 전달되는 진공이 없으면 관념에 불과하니 음악은 자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자연의 소리가 서라운드 형태로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텐트에서 관객들이 둘러싸는 중심 공간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무대 연출로 관객은 이전과 달리 보다 입체적이고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청중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둘러싸며 얻어진 효과다.

보고 듣는 것 이상의 공연 세계가 열렸다. 클래식 공연이 진화하고 있다. 무대 위를 바라보고 앉아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소리를 ‘감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는 이제 객석의 오감을 건드리고, 소리를 체험하는 다양한 공연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수석 객원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의 공연에선 죄르지 쿠르탁의 ‘판타지풍으로’을 연주할 당시 연주자의 일부가 무대 아래에 자리해 보다 입체적인 소리를 들려줬다. [서울시향 제공]

최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수석 객원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의 공연에선 죄르지 쿠르탁의 ‘판타지풍으로’를 연주하며 반야드 스타일의 롯데콘서트홀을 100% 활용했다. 연주자들이 무대 위를 비롯해 객석 곳곳에 자리하자, 악기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곡은 애초 악기를 객석과 객석 사이나 뒤편에 배치하도록 ‘악보상의 지침’이 주어진 곡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로 연주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쿠르탁의 곡은 일반적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이 아니고, 정기 연주회에서 연주하는 일도 드물다”라며 “슈텐츠는 실험적 시도와 원전에 충실한 해석을 하는 데에 있어 적극적인 지휘자라 연주자의 무대 아래 배치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날 연주회를 위해 서울시향과 슈텐츠 지휘자는 롯데콘서트홀의 객석과 무대 배치도를 들고 악기의 위치를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피아노·팀파니·하프 등은 무대 위, 현악기는 무대 아래 왼쪽, 목관악기는 무대 아래 오른쪽, 금관악기는 객석 뒤쪽의 배치를 완성했다. 리허설과 공연엔 서울시향 연주자 외에도 경희대학교 등 학부 학생들을 섭외, 이색적인 ‘참여형 연주’를 시도했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보통의 공연과는 다른 무대 연출을 통해 기존의 공연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소리들의 조합이 다가온다”라며 “이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체험의 영역으로 접어든 공연이자, 음향에 대한 고차원적 체험이다”라고 말했다.

롯데문화재단의 ‘오르간 오딧세이’(28일 공연)는 보다 직접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관객에겐 생소한 파이브 오르간의 원리와 작동 과정을 보여준다. 롯데문화재단 관계자는 “오르가니스트가 연주를 하는 동안 건축물 같은 악기로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며 “관객들이 잘 몰랐던 모습을 보여주니 악기에 대한 흥미와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악기에 대한 해설과 더해지는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는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 오르간의 진동이 단지 듣는 것을 넘어 보고 느껴지는 공감각의 영역으로 전환한다.

허 평론가는 “코로나19로 한동안 공연이 올라가지 못했는데 무대 연출의 변화나 색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을 통해 현장에서의 공연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라며 “파이프 오르간이나 현악기 등의 악기는 현장에서 관객들이 큰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고, 이러한 것이 감동으로 돌아온다. 온라인 공연은 대체할 수 없는 공연의 필요성과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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