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줄다리기’에 규제 얼룩진 CVC

정부가 낡은 규제인 금산분리 원칙을 깨고 대기업 지주회사도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논의 과정에서 부처별 이견에 따라 안전장치라는 명목으로 각종 제한 조항이 추가됐다. 벤처투자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에 반하는 대목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오전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서 ‘일반지주회사 CVC 보유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공정거래법 내 예외 규정을 둔다. 공정거래법 8조2의 ‘지주회사는 금융·보험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는 조항을 수정해 CVC는 금융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는 식이다. 일반 지주회사의 금산분리 규정에 한해서만 창업투자회사(창투사)와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를 금융사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CVC가 총수일가의 사익에 악용돼선 안된다는 이유로 각종 안전장치가 달렸다. 공정위는 지주회사가 자기 자본으로만 CVC를 만들도록 해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했다. 차입규모도 제한된다. 아울러 CVC가 펀드를 조성할 때 대부분 자금을 지주회사의 계열사 또는 자기자본 출자로만 가능토록 했다. 일부만 외부에서 자금을 받아 올 수 있다.

투자 대상도 제한된다.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나 대기업집단 계열사에는 투자하지 못한다. 해외 투자도 아주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CVC의 투자 내역,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내역 등도 정기적으로 공정위에 신고해야 한다. 당초 CVC 보유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던 취지에서 한참 후퇴한 방안으로 평가된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13년 연속 성장하던 벤처투자가 올 1분기에 결성액이 20% 줄었고 실제 투자액도 4% 정도 줄었다”며 “정부로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전향적인 규제 완화를 시사한 셈이다.

하지만 부처별 이견을 좁히는 과정에서 규제 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지주사가 CVC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펀드 만들 때 60%를 자기 자본으로 투자해야 하는 만큼 자금이 넉넉하게 필요한데 지주사의 경우 활용할 수 있는 현금이 적다. 손자회사로 CVC를 만들 수 있게 해 계열사도 CVC에 자본금을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정부의 추진 방향으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부처별 알력 다툼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추진 방향이 정해진 29일에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국회서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손대는 것보다는 벤처투자법으로 가는 것(개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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