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먹는 삶·저녁있는 삶…“직주근접, 삶의 질 향상 위해 절대 필요”

지하철에서 출근길을 재촉하느라 여념이 없는 시민들. [연합]

[헤럴드경제=윤호·주소현 기자] 같은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통근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운 좋게 회사 인근에 거주해 도보 또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경기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인천으로 수회의 버스와 지하철 환승을 거쳐 몇 시간이 걸려야 비로소 출근 도장을 찍는다.

실제로 단거리 통근자와 장거리 통근자의 일일 시간표를 그려보니 후자는 전자에 비해 매우 단조로웠다. 회사 업무와 통근을 빼면 남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주 52시간 근무제’ 또는 ‘주 40시간 근무제’가 무색할 만큼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하게 적고, 아침은 물론 저녁끼니마저 대강 때우기 일쑤다.

반면 전자는 매일 건강과 직결되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저녁시간을 취미나 자 기계발은 물론 연인과 데이트에 쏟을 수도 있다. 수면 시간은 크게 늘고 스트레스는 크게 줄어든다. ‘아침 먹는 삶’과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삶의 질 향상’과 ‘워라밸 확보’와도 직결된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에서도 이사를 한 이유로 직주근접이 31%를 차지했다. 이 같은 수치는 2016년 20%에 비해 11%포인트 증가한 것다. KEB하나은행 한국금융연구소 조사에서도 서울시 직장인 중 거주지와 직장이 같은 구에 있는 경우가 2008년 42%에서 2018년 51%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3040 맞벌이 가구 증가가 직주근접 선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 맞벌이 비율은 40.4%로 전년 대비 0.2%p 증가했다. 또 도심에 위치해 대형 쇼핑몰, 문화 시설 등 생활 인프라를 이용하기 편리하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늦은 저녁 일과를 마치고 서울의 한강공원을 찾아 여가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연합]

▶“직주근접만이 주52시간제를 완성시킬 수 있다”=직장과 가까운 곳에 살아본 사람들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이 삶의 풍요로움을. 집이 좀 좁아지더라도, 직주근접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거주하면서 회사에 도보로 출퇴근하는 김모(34)씨는 평수를 대폭 줄여 회사와 근접한 곳으로 이사한 이후 “오히려 살 맛 난다”고 표현했다.

김씨는 “회사가 유연근무제를 시행해 마음만 먹으면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할 수도 있다. 지금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것은 아침에 영어 스터디로 자기 계발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때론 늦잠을 자거나, 경우에 따라 병원이나 금융기관 등 개인 사무를 보고 출근해도 넉넉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대개 집에 오는 길 식당에 들러 여유있는 저녁식사를 즐긴다. 이렇게 하면 귀가 시간 자체가 더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이후 요가 수업을 듣고 유튜브를 즐긴 후 잠에 들어도 7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이 확보된다. 그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평일에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수도 있어, 주말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다”며 “주 52시간 근무제가 사회적으로 자리잡았다지만, 직주근접만이 진정한 주 52시간제와 워라밸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주근접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거나 육아를 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서울 동작구 내에 집과 직장이 모두 있다는 문모(42)씨는 “가족과 오붓하게 저녁식사는 물론, 하루를 시작하기 전 아침식사까지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삶에 큰 활력이 된다”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출퇴근하는 박모(38)씨도 “아이들을 지하철로 두어 시간 걸려 회사 근처 어린이집에 다니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직주근접이 아니라면 또 다시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 찬스를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은 오후 9시에야”=직주 거리가 먼 직장인들은 집에서 직장까지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한 시간 반은 잡아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이야기였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서울 용산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25)씨는 “5호선 강동역까지 버스로 30분 이동한 뒤 지하철 노선까지 환승하면 두 시간이 걸려서야 직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 노원구에서 영등포구로 출근하는 직장인 한모(27)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버스 1회 환승, 전철 1회 환승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오전 7시께 집에서 출발해야 지각을 면할 수 있다.

‘직주분리’는 단순한 통근 시간 연장 외에도 이와 관련된 각종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김씨는 버스가 날씨나 교통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탓에 매일 버스 정보를 조회하고, 출근 준비 내내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쩌다 길 건너편 버스를 놓치거나 눈 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힐 때에는 승객들이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느껴진다. 그는 “최대한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려고 환승 구간이 가까운 열차 칸, 버스 정류장과 가까운 출구를 꼭 알아보고 다닌다”고 했다. 교통 체증은 물론 마스크를 쓰고 힘겹게 탑승한 지하철에서 시간은 출근 전에 이들을 이미 녹초가 되게 한다.

직주 거리가 먼 지강인들은 아침식사는 ‘당연히’ 거의 거르며, 저녁식사마저 위협받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저녁은 주로 집에 와서 오후 9시쯤 늦게 먹는데, 그나마 일이 늦어지면 오는 길에 대강 때운다”며 “운동은 언감생심, 저녁식사 후에 간단한 산책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취미나 자기 계발을 위해서는 다음 주말까지 일주일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한씨는 “대중교통에서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다. 도심에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상상”이라며 “소소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다 늦게 잠들고, 퇴근 후 운동도 여유있게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전문가 “직주근접은 국가 생산성에도 영향”=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긴 통근 시간은 과로와 다를 바없다며, 직주근접은 충분한 휴식 시간 확보와 스트레스 감소로 개인 생산성은 물론 국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수 한양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장거리 통근자는 긴 출퇴근 시간까지 직장생활에 포함돼 빨리 지칠 수밖에 없다”며 “매일 초과 근무로 과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어 “셀프케어, 즉 자기를 돌보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일은 물론 다른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단거리 통근자는 하루 24시간이 늘어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라며 “아무래도 직장이 밀집한 도심 지역 부동산 가격이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휴식 시간 확보는 개인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하나하나 모일 경우 국가 생산성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직주근접은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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