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바이든 맞을 준비…손익계산 바쁜 월스트리트

미국 대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월스트리트가 발빠르게 ‘바이든 행정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정신을 재건하자” 바이든의 경제정책은?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항해 바이든 후보는 전통적인 ‘미국 정신’(the soul of America)를 강조한다. 안으로는 중산층 중심의 정책지원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밖으로는 온건 자유무역주의를 토대로 자유무역을 확대하고 포용적 이민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법인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올리기로 하

면서 “아마존이 연방세를 내지 않던 시절은 끝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미국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밑그림이다.

특히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당내 경선 마지막 경쟁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층을 온전히 빨아들이기 위해 그의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바이든과 샌더스 캠프는 경선이 끝난 뒤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공동정책 권고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정책은 노동과 환경 분야다.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올릴 계획이다. 또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란 구호 아래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를 강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기업들에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정책이다.

반면 환경 분야에서는 강력한 정책 모멘텀이 기대된다. 바이든 후보는 2050년까지였던 탄소중립 경제 달성 목표를 샌더스 의원과 협의를 통해 2035년으로 앞당겼다. 또 2조달러에 달하는 대대적인 친환경 투자도 약속했다. 도로와 교량 등 전통적인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내건 트럼프 캠프와 가장 큰 차이가 난다.

또 ‘미국 우선 구매(Buy America)’를 엄격히 적용해 미국 기업에 수혜가 가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바이든 후보는 500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 강력한 재정확장 정책으로 자칫 과도한 진보좌파 정책으로 인한 타격을 우려하는 금융계와 재계을 달랜 것이다.

바이든 후보의 측근으로 민주당에 거액을 후원하고 있는 억만장자 벤처 투자가 앨런 패트리코프는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법인세율 인상은 좌파나 진보주의자의 문제가 아닌 경제를 다시 균형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에 등돌린 월스트리트

트럼프 행정부에서 월스트리트는 호황을 누렸다. 법인세는 낮아졌고 끊임 없이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을 압박해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넘어오도록 했다. 금융회사들은 자사주 매입과 고배당으로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이제 월스트리트의 관심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된 뒤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로 옮겨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펀드매니저의 73%는 지난해 12월만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지금은 62%가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WSJ는 “바이든 후보는 투표율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보다 우위에 서있다”고 전했다.

군수업체들의 주가가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점치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무기 판매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반영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국방예산으로 요구한 금액은 7054억달러인데 비해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이보다 100억달러 낮게 책정한 상태다.

급기야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금융투자업계가 바이든의 대선 승리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상원과 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시장의 민주당 상원 승리 전망은 지난 2월 30%에서 7월 61%로 늘었다. 하원 역시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같은 기간 61%에서 85%로 높아졌다.

케이스캐피탈자문의 케니 폴캐리 전무이사는 악시오스에 “민주당의 압승을 이야기하는 건 이제 투자자 사이에서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이 불안한 월스트리트

월스트리트가 고정변수로 놓고 있는 바이든 정책은 세금 인상이다. 증세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민주당이 상원까지 장악하면 그 폭과 속도는 더 커질 수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조너선 골럽 미국 주식전략 담당 수석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최근 바이든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것과 관련한 투자자의 문의는 거의 전적으로 세금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그것이 지금 당장 시장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RBC캐피털마켓이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서 투자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보다 오는 11월 대선을 더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60%는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주식시장에 부정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UBS는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면 주당수익이 5%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골드만삭스는 S&P500 구성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이 약 170달러에서 150달러로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미국 주식 전략가는 “증세는 시장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라며 “수익은 물론 결과적으로 주가에도 큰 위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투자은행과 일반 상업은행을 분리하는 21세기 글라스-스티걸법 등 은행에 대한 규제 강화도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사상 최고치에 가까워지는 주식이 사라지길 바란다면 민주당 좌파와 부패한 바이든에게 표를 던지라”며 시장의 불안감을 들쑤셨다.

반면 백악관에 입성할 바이든의 모습을 월스트리트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

JP모건은 바이든 후보가 내세운 인프라 지출로 인한 잠재적 이익, 관세 위협 완화, 임금 인상 등이 시장 친화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증세로 인한 주요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낮을 수 있으며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기업들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소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JP모건은 S&P500 구성 기업의 2021년 EPS가 163달러에서 159달러로, 소폭 감소하는데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골드만삭스의 EPS 추정치 감소폭보다 훨씬 적다.

수십년 간 미국 정부의 정책을 연구해온 스코크로프트그룹은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무역 정책과 관련해 뜬금없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낮다며 투자자들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사랑은 비용을 상승시켰고 불확실성을 높였다”면서 “바이든 후보의 승리는 투자자들이 혐오하는 무역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의 가장 큰 적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불확실성이란 것을 꼬집은 것이다.

또 바이든 후보가 노동이나 환경 분야에선 샌더스 의원의 주요 정책을 받아들이면서도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Medicare for All)’이나 그린뉴딜 정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백악관에 입성하더라도 지나치게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금융자문사인 시그넘글로벌자문은 이를 근거로 “바이든 후보와 그의 캠프가 당의 균열을 피하기 위해 진보 진영에 충분한 양보를 하면서 정책 방향을 통제하는 매우 성공적인 노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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