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日 버블형성기와 유사…‘돈’ 생산적 투자로 못 돌리면 ‘재앙’ [유동성 함정 비상]

서울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현금운송 관계자들이 자금 방출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해준·배문숙·정경수 기자] 지속적인 재정 확대와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 유동성이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넘은 가운데 ‘돈’을 풀어도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몰려 오히려 경제의 불균형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졌던 것과 같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풍부한 시중 유동성을 생산적 투자와 소비로 유인할 수 있는 실효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돈이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쪽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투자 열기는 일본에서 경제 거품(버블)이 형성되던 시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엔화 가치 상승)로 수출이 급감하자 경제활력을 위해 금리를 사상 최저로 내렸고, 이때 풀린 유동성이 거품을 키웠다.

일본의 총자산 규모 증가액은 1985년 318조원에서 1989년 864조원으로 급증했다. 1989년 자산 가격 증가액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2배에 달했다. 당시는 이를 버블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당국이나 투자자 모두 지가와 주가의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믿었다. 일본에서는 토지가 가장 안전한 투자 대상이자 유리한 자산이라는 특유의 ‘토지 신화’가 이런 비이성적 투기 열풍을 조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거품, 즉 경제적 불균형은 지속될 수 없었다. 1990년대 들어 인구 감소와 함께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엄청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일본 중앙은행이 제로금리까지 동원하며 다시 돈을 풀었지만 기업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았고, 소비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갑을 열지 않았다. 최악의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란 장기 침체로 치달은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올 5월 현재 총통화(M2)는 3054조원으로, 1년 전보다 9.9% 급증하며 국내총생산(GDP)의 1.5배 수준에 달했다. 해마다 4~7% 증가세를 보이던 총통화 증가율이 급격히 높아졌지만 상반기 성장률은 -0.8%로 후퇴한 상태다. 인구 감소로 인한 총수요 위축과 구조적 저성장이 예견되는 상황인데도 돈이 부동산시장에 몰리며 경제적 불균형을 키우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이 그만큼 안전하고 수익률이 높다고 판단해 자금이 몰리는 것”이라며 일본식 버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저금리와 저성장이 결합하면서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계속 두면 버블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시중 유동성을 생산적 투자로 돌릴 방안이 시급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유동성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 활력을 높여야 한다”며 “기업과 가계의 돈이 일거리와 부가가치를 만들고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곳으로 흐르게 해야 일본식 불황에 안 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hjl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