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속 유동성 함정에 빠진 일본 ‘판박이’…“정부·한은의 재정·정책운용 타이밍이 생명”

최근 우리 정부의 저금리, 재정 조기집행 확대 정책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돈만 풀었던 1990년대 일본과 거의 판박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시 일본은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보다 금리인하, 재정투입 등 단기적 경기부양책에 급급하다가 전체 산업의 생산성이 정체되고, 잠재성장력도 약화돼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

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일본의 통화지표인 M3(현금+은행예금)는 1442조6000억엔(한화 1경6300조원가량)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공격적인 재정·통화정책이 나온 영향이다.

문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막대한 유동성의 향방이다. 실물경제가 아닌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위기시엔 돈풀기가 ‘정공법’이나 모든 처방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바로 유동성 함정과 자산 버블에 대한 우려다.

일본은 1980년대말 일본은행의 출구정책 실패에다 1990년대 이후 경기판단의 실패와 1990년대 중반 금리정책의 실기 등으로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경기진작을 위한 전통적인 방법인 금리인하와 재정확대를 통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에 활력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유동성 함정이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후반 기준금리(콜금리)를 0%대의 낮은 수준으로 운용했지만, 경제는 제로성장을 면치 못하면서 이 함정에 빠졌다.

당시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서 디플레이션으로 진입하고 있었으나 당국이 금융완화 정책의 출구시기를 저울질하자 시장에선 이를 긴축정책으로의 전환 신호로 해석하면서 엔고(高)가 초래돼 경제에 또 한번 치명타를 가했다.

결국 1995년 후반기부터 1998년 상반기까지 콜금리가 0.4~0.5%의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연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은 0.09%에 머물렀다. 2000년대 들어 일본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급기야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콜금리를 거의 제로 수준으로 유지하는 극단적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하면서 불황타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문가들은 경기상황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정책적 대응이 맞아떨어져야만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을 피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 자문위원은 “한국이 일본식 장기불황에 진입하느냐, 유동성 함정의 국면에 가까이 가느냐 여부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재정 및 통화 정책 운용의 타이밍에 달려 있는 셈”이라며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게 재정관리에 나서고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정책수립에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경제는 저성장 속에 저물가가 이어지며 활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올해 2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3.3%급락했고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 0.3%를 기록해 8개월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0%를 기록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 예금금리도 사상 처음으로 0%대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6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를 보면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권 저축성 수신금리는 0.18%포인트 내린 연 0.89%였다. 0%대 금리는 1996년 1월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배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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