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낙제점…차라리 개입 말아라”

이인호 한국경제학회 신임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교정에서 한국경제의 현황과 전망, 개선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정치와 경제가 균형있게 어우러질 때 성장과 분배를 모두 고루 달성할 수 있다”며 “시장의 자율적인 자원 배분 기능까지 해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상섭 기자

코로나19 경제 충격에 대한 대응부터 기본소득 논쟁, 부동산 시장 과열, 행정수도 이전까지 정치가 모든 이슈를 이끌고 있다. 모든 사안을 정치 논리로 접근한 탓에 포퓰리즘이 횡행했다. 이미 소득주도성장으로 지친 한국경제가 계속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국민들은 이슈마다 번번이 갈라섰다.

혼탁한 현 경제·사회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제50대 한국경제학회장인 이인호(63)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가 이끄는 한국경제학회는 1952년 11월 30일 출범한 국내 최대 경제학회로 회원은 5000여명에 이른다.

그는 낮은 목소리 톤으로 현 정부 정책에 대해 일갈했지만, 답변마다 고뇌가 묻어나왔다. 여러 차례 시장 원리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올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금융 정책이 필요한 역할을 잘했다”고 짧게 칭찬했다. 곧바로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혹평을 날렸다. 그는 “부동산 정책은 완전 낙제점”이라며 “이게 경제 정책이냐. 정치지”라고 평가했다.

정치의 지나친 개입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시장이 시장 원리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오히려 주택 가격이 오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은 무책임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정부는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부동산 과열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기대)’ 이론으로 해석했다. 행동경제학적 관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유사한 심리학 용어로 기대를 하고 믿으면 결국 그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회장은 “집값이 오를 것 같다. 수요가 늘어날 것 같다. 이러한 자기충족적 기대가 일종의 신앙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집값이 오를 거라고 믿고 샀더니 실제로 가격이 오르고, 여전히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경험을 한 사람들이 누적됐고, 가격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한 부동산 가격 거품(버블)을 우려했다.

개인투자자 주식 매수 열풍을 일컫는 동학개미운동도 같은 사례라고 언급했다. 그는 “내가 사면 너도 산다는 심리 때문에 주식이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수가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믿고 있는 상황에선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편다고 한들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이 회장은 “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가격 인상 신호로 읽고 있다”며 “과세, 공급 확대 수단으로 투기 수요를 잠재울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주택이 중요한 ‘자산 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유럽인들은 한집에서 오래 사는 대신 주택으로 부를 축적하지 못한다. 때문에 부동산 과열 현상이 없다”며 “반면 우리나라서 부동산은 부를 축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신혼 때 사글세로 시작해 집 평수를 조금씩 넓혀 가면서 돈을 모았다”며 “한국인에게 주택은 주거 수단이자 자산 증식 수단, 노후 대책인 셈”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몇몇 소수에 의해 주택이 투기 수단으로 쓰인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에겐 긍정적인 목적으로 쓰였다”며 “이런 주택 의미와 시장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면 정부 정책은 사람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유동성 과잉으로 많은 사람이 자산 증식에 열중하는 과열 현상이 나타났다고 봤다. 이 회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시중 유동성을 만든 저금리가 경제를 상당히 왜곡시키고 있다”며 “정기 예·적금의의 금리가 5%만 됐어도 은행을 찾았겠지만 이젠 돈 벌 수 있는 곳이 부동산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집값 상승 기대를 제어하는 수단 역시 유동성 통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대표적이다. 지금과 같은 징벌적 과세는 올바른 처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 회수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시작된 양적완화가 십여 년째 유지되고 있다”며 “물론 미국이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우리나라만 홀로 금리를 올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유동성 과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히려 집값 폭락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시간 내 쏟아낸 정책의 효과가 내후년쯤 나타나기 시작하면 부동산 버블이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와 경제 간 균형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투기 수익을 100%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며 “시장의 자율적인 자원 배분 기능까지 해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이 발달한 이유도 결국 부동산 투자, 개발을 위해 돈이 몰린 영향”이라며 “모두가 집을 사지 못한다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일어나 다같이 못사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의 기본 원리는 능력만 있다면 현재 돈을 빌려 미래에 갚는 것”이라며 “온전히 내 재산으로만 집을 사려면 아무도 집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시장실패가 나타나면 보완책을 찾으면 된다. 다만 그 수단이 정치 한 쪽으로 쏠려선 안 된다”며 “정치와 경제가 균형있게 어우러질 때 성장과 분배를 모두 고루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준·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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