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국의 현장에서] ‘검경개혁’ 후퇴…7월에 무슨일이?

“7월부터 갑자기 기조가 변경됐다.”

법무부가 이달 7일 입법예고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의 대통령령(안)과 관련, 논의 과정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귀띔이다. 이 관계자는 “6월 말에 최초 합의안이 나왔을 때에는 경찰 입장에서 ‘독소조항’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며 “갑자기 검찰 수사 개시 범위 등이 확대됐다”고 했다. 법무부와 경찰청은 지난 1월부터 대통령령 제정을 위한 논의를 해왔다.

입법예고된 대통령령에는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개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시행령 주관을 법무부 단독으로 하는 내용도 입법예고안에 포함됐는데 이는 당정청 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다수의 여권 인사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향’이 바뀐 것은 또 있다. 경찰 개혁안인 자치경찰제·정보경찰 개혁이다. 애초 자치경찰제 도입은 지자체 소속의 자치경찰, 중앙정부 소속의 국가경찰로 이원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됐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나온 개혁안에는 자치경찰 일원화 방향으로 수정됐다.

역시 논의 과정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7월 초 자치경찰제가 이원화가 아닌 일원화로 발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보경찰 얘기는 개혁안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사찰논란이 일었던 정보경찰은 경찰의 핵심 개혁대상이었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소설 하나가 불현듯 떠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양어선에 탄 조선 선원들이 일본 선장의 가혹한 처사에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의 소설이다. 이야기는 조선인들이 제3국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반란에 참여시키는 부분에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배를 장악한 후 일손을 놓은 채 제3국인들을 가두고 노예처럼 부리는 조선인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검찰·경찰 개혁의 후퇴’에서 이 소설이 떠오른 것은 권력의 속성에 대한 씁쓸함 때문이다. 검경 개혁은 국민이 아닌 ‘정권’을 위해 존재해 왔던 수사기관에 칼을 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경찰 개혁 모두 후퇴했다. 검찰 개혁은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방향의 결과물로 나왔고, 경찰 개혁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속성이 드러난 일은 더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고소 사건의 청와대 보고가 문제됐을 때 김창룡 경찰청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보고 기준’을 명확하게 하도록 내부 규칙을 정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래된 용어에 대한 수정만 가해진 채 초안이 마련됐다. 보고 기준을 명확히 하면 청와대에 도달하는 정보의 양이 줄어들 터. 이를 반기는 권력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검경 개혁의 후퇴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단순히 조직원의 반발 때문만이었을까. 검경 개혁의 기조가 방향을 트는 사이, 추미애 장관은 정권에 우호적인 검사를 중심으로 지난주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를 통해 검찰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급격히 뒷걸음질친 검경 개혁 논의를 바라보고 곱씹을수록 소설 속 조선인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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