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열의 ‘누구도 가지 않은 길’…“매순간 두려웠다, 이제 항해의 시작”(영상)

‘국악계의 아이돌’로 불린 소리꾼 고영열은 최근 종영한 JTBC ‘팬텀싱어3’에 출연, 라비던스 팀으로 준우승에 올랐다. 피아노를 치며 부른 ‘사랑가’를 시작으로 “존재 자체가 크로스오버”라는 극찬을 받으며 프로그램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발했다. 박해묵 기자/mook@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존재 자체가 크로스오버”(JTBC ‘팬텀싱어3’ 프로듀서 지용)였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의 등장은 ‘파격’으로 비쳤다. 그의 음악은 진작부터 경계가 없었지만, 대중에게 ‘전통’은 여전히 낯선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는 베이스, 음역은 테너, 직업은 소리꾼”이라고 소개한 고영열(27)이 피아노를 치며 ‘사랑가’(‘춘향가’의 한 대목)를 부르자 스튜디오는 잠시 여행을 떠났다. 무대는 인적 없는 “대나무 숲”(‘팬텀싱어3’ 프로듀서 김이나)으로 모습을 바꾼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단소 소리”(김이나)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한 그의 음악은 ‘파란’이었다.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장르를 허물었고, 경계를 넘나들었다. 2016년 두번째달과 함께 ‘판소리 춘향가’에 참여했고, 월드뮤직 오케스트라를 표방한 이스턴모스트를 결성해 첫 앨범(온 보야지(On Voyage))도 냈다. 걸그룹 오마이걸 승희와 듀엣을 하고, 듀오 옥상달빛과 협업을 했다. 진작부터 ‘국악계의 아이돌’로 불렸다. 고영열의 존재감이 뒤늦게 ‘팬텀싱어3’를 만나 확인됐을 뿐이다.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최근 서울 후암동 헤럴드경제 사옥에서 만난 그는 “‘팬텀싱어’를 마치고 정신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라비던스가 항해 길에 올랐고, 고영열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고영열에게 ‘크로스오버’는 외롭게 혼자 걷던 길이었다. “국악을 알리고 ” 박해묵 기자/mook@

▶ 누구도 가지 않은 길…국악 크로스오버를 향한 열망=고영열의 ‘팬텀싱어3’ 출연에 대해 동종업계에선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이 없던 것도 아니다. ‘이유 없는 선택’은 없었다.

“크로스오버 활동을 하다 보니 이것에 대한 정답이 없었어요. 장르를 뛰어넘는 미래지향적 음악이잖아요. 클래식이든, 국악이든 다른 장르는 오랜 시간 이어져 밟아온 과정이 있고, 대가가 있어 따라갈 수 있는데, 크로스오버는 길이 없더라고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함께 걸을 사람도 없었다. 지금 걷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 지도 모르면서 새로운 길을 가야 했다.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었고, 국악이 함께 하는 크로스오버 팀이 생기면 더 큰 장르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등장과 함께 ‘독보적 존재감’을 보였지만,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의 주류 참가자는 성악가와 뮤지컬 배우로 양분돼있기 때문이다.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예선 당시 “고정관념을 가지고 보는 시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끝날 때까지 불안의 연속이었어요.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요.” 팀원을 꾸릴 때도 쿨하게 다가섰고, 산뜻하게 돌아섰다. “먼저 손을 건네지 않으면 다가오기 힘들 테니까요.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저와 함께 하는 건 모험이거든요.” 가슴 한켠엔 누구도 모를 감정들이 자리했다. 그래도 ‘생존본능’이 앞섰다. “거절 당해도 마음이 상하진 않았어요.” 고영열과의 무대를 ‘최고’로 꼽는 존 노, 황건하, 김바울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판소리를 처음 시작한 건 열세 살 때였다. 목표는 수영선수.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시작한 판소리는 인생을 바꿨다. “저는 국악이 너무 좋아서 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아무도 국악에 관심이 없더라고요.” ‘사랑가’를 알기 바라는 것도 순진한 기대였다. “분명 매력이 있는데, 왜 내 친구들은 보지 않을까. 그 고민이 크로스오버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전통음악의 존재만으로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거예요. 화려하고 다채롭게 구성된 노래가 쏟아지는데 전통음악은 조미료를 치지 않은 순수한 노래라 매력이 없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영열은 “국악은 나의 삶이자, 정체성”이라고 우리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했다. 박해묵 기자/mook@

▶ 고영열과 떠난 세계여행…국악의 재발견=15년, ‘나 홀로’ 고군분투했던 젊은 소리꾼의 험난한 여정은 ‘팬텀싱어3’를 계기로 빛을 발했다. 그의 소리 앞에선 누구라도 여행자가 됐다. 고영열이 운을 떼면 안방1열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였다.

첫 여행지는 쿠바. 존노와 함께 한 라이벌 미션 ‘투 에레스 라 무시카 케 텡고 케 칸타르’(Tu eres la musica que tengo que cantar) 무대는 무서운 두 실력자의 미래를 알렸다. 그리스(‘티 파토스’(Ti pathos))를 거쳐 스페인(‘테 키에로 테 키에로’(Te Quiero, Te Quiero))으로, 이스라엘(‘밀림 야포트 메엘레’(Millim Yaffot Me’Eleh))까지 향해 갔다. 이쯤하면 ‘선곡의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들어왔어요.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음악을 찾아다녔는데 힘든 과정이었어요.” 음악에 담긴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 봤고, 자신의 색깔을 녹이기 위해 고민했다. 가장 어려웠던 무대는 가장 잘 하는 것을 선보인 결승 1차전이었다. “‘흥타령’은 국악인이지만, 너무나 어려웠던 무대였어요. 기대가 클 거라는 부담이 있었고, 그런 부담이 불안으로 오기도 하더라고요.” 부담도 불안도 기우에 불과했다. ‘팬텀싱어’ 최초의 국악 무대는 최고 점수를 받았다. 우승은 라포엠에게 돌아갔지만, 고영열에게 아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헤럴드스토리

“한국 사람들이 한국 음악을 즐기진 않더라도, 그냥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국악을 하는 국악인으로서 안타까웠어요. 저의 숙제라 생각하고 해답을 찾던 과정이었어요.” ‘팬텀싱어3’는 외로운 길을 걷던 고영열에게 위로와 응원이 됐다. 걸어온 길에 대한 확신도 얻었다. ‘흥타령’으로 극찬을 받은 그는 방송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헛짓거리를 해온 건 아니었구나, 답을 찾아가고 있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금’ 황금 시간대 등장한 고영열을 계기로 전통음악을 향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그는 “저라서 특별한 건 아니”라고 “다른 국악인이었어도 국악의 색채로 매력을 보여줬을 것”이라고 말한다. 피아노와 화성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던 그는 모든 무대를 통해 뛰어난 선생님이자, 프로듀서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고영열과 라비던스의 항해에 기대가 모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악은 저의 삶이고, 정체성이에요. 국악을 잃으면 저의 존재도 무너져요. 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국악적인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저도 라비던스도 콜롬버스의 배와 같아요.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선원들이에요. 누구도 닦아놓은 길이 없기에 콜롬버스의 배가 돼 방향을 잡고 헤엄쳐 나가려고요. 더딜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한과 흥을 느끼도록 헤엄쳐 가고 싶어요.” ‘광적인 안내자’(라비던스)들의 여정은 이제 돛을 올렸다. 그들에게 바람이 분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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