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산재 책임’ 더 무거워진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벗기 위해 기업의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 지자체가 산재예방 계획 수립, 교육 및 홍보, 사업장 지도를 하도록 함으로써 산재를 적극 줄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기업처벌 수위를 높인 산안법을 개정한지 1년만에 다시 기업 처벌강화 카드를 내민 셈이다.

하지만 산재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기업의 경제적 책임만 강화하는 대책으로는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6개 지방청장, 안전보건공단, 건설·제조업 민간 산재예방기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며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산재 예방을 위해 지자체와 협력을 강화해 지자체가 산재예방 계획 수립, 교육 및 홍보, 사업장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산안법에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필요한 지원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부는 아울러 사업장 관리·감독도 강화한다. 최근 사고가 빈발하는 소규모 건설현장에 대해 불시에 점검하는 패트롤 점검 대상을 3만곳에서 6만곳으로, 추락 감독도 4400곳에서 62009곳으로 확대한다.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화재, 질식, 태양광 시공, 벌목 분야에 대해서도 현장 지도·점검, 안전교육, 안전기준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등 관계부처, 지자체 등과 협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같은 정부의 대책에 대해 산재사망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해 해당기업의 안전관리를 유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한 이 법은 대형사고가 나면 경영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게 핵심이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후 국회에서 잠자다 자동폐기됐고 21대 국회들어서도 지난달 법사위에는 상정됐지만 논의도 못한채 빠져버리는 등 법 제정작업이 지지부진하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 중대기업처벌법 도입을 하반기 주요 이슈로 삼고 있으나 경영계와 입장차이가 커 국회통과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사고로 큰 인명피해가 나더라도 사업주는 대부분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벌받는데 법정형량은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사업주 처벌이 약하다보니 산재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미약해 산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OECD 201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영국보다 20배 이상 많은 10.1명이다. 한국은 1994년 이후 2016년까지 23년 동안 단골 산재사망률 1위 국가다. 총 산재사고 발생률은 OECD평균의 25%정도로 낮지만 산재사망률은 가장 높다. 사망사고가 아니면 신고되지 않는 고질적인 병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산안법 개정으로 처벌의 상한 수준을 높였지만 하한선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6년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원이고, 지난 10년 동안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김대우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