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자르고 붙이고…AI의 시작을 디자인하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척척 답해주는 챗봇, 마스크 걸쳐 쓴 얼굴만 내밀어도 출입문을 열어주는 시스템, 신체의 각종 신호를 보고 건강 이상을 판단해주는 ‘손 안의 의사’까지. 인공지능(AI)이 일구는 문명은 날로 진보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진보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전례없는 빠른 속도로,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올해 창업 4년차 벤처기업인 에이모는 AI의 시작을 디자인하는 기업이다.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가공하는 역할을 한다. 음성, 이미지, 문자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용도에 맞게 자르고, 이름표를 붙여(라벨링)해서 고객사에 제공한다. 요리할 때 불을 쓰기에 앞서 재료를 다듬는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기 전 교재를 만드는 과정과 흡사하다.

오승택 에이모 대표는 “모든 AI가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라고 설명했다. “에이모는 2016년 AI를 활용한 구매예측 모델링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개발하려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켜야 하는데, 고급인력인 개발자들이 전부 데이터를 라벨링하는 단순작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효율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지 않고 외주 주는게 낫지 않나 싶었는데, 국내에는 외주 줄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외국에는 이미 아마존에서 자회사(메커니컬 터크)를 만들어 뛰어들고 있었고, 마이티AI 등 전문 기업도 나왔죠. 보면서 이 시장이 정말 클 것 같다는 희망이 들었어요. 실제로 지난해 마이티AI가 우버에 인수될 정도로 기업들의 관심사가 됐고요.”

외국에서는 굴지의 IT 기업들이 자금력과 데이터 규모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상황. 에이모는 ‘모든 AI가 거쳐가는 관문’을 ▷플랫폼 ▷워크포스(노동력) ▷AI 어시스트 등 3가지 경쟁력을 앞세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중 플랫폼은 에이모가 이달 출시한 ‘따끈따끈한 신상’이다. 오 대표는 인터뷰의 상당 시간을 학습데이터 가공 플랫폼인 ‘에이모 엔터프라이즈’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에이모 엔터프라이즈는 AI를 학습시킬 데이터를 누구나 가공해 산출할 수 있도록 만든 종합 패키지형 플랫폼이다. “에이모의 기술과 툴, 템플릿을 활용하면 빠르고 편하게 학습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습니다. 이만한 기술을 부여해 견고하게 만든 학습데이터 가공 툴은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 에이모 외에 몇 개 없습니다. 초창기 스타트업이나 학생들도 비용 부담을 줄이도록 회원가입만 하면 누구나 쓸 수 있게 오픈해놨습니다.”

에이모는 플랫폼에 데이터 가공인력(워크포스) 활용까지 결합시킨, 차세대 플랫폼도 준비하고 있다. “고객들이 에이모의 플랫폼으로 학습데이터를 가공하고, 필요할 때만 가공인력을 쓸 수 있도록 연계하는 작업까지 고려중”이라는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학교나 기관 등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곳들도 AI 관련 연구를 효율적으로 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에이모는 여기에 ‘AI어시스트’라는 기능까지 접목했다. 이는 AI가 작업자를 도와 1차로 학습데이터를 가공하는 것으로, AI를 가르치기 위해 교재를 만드는 작업에도 AI가 참여하는 셈이다.

“AI어시스트가 1차 작업을 해주면 공정이 50%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하나를 완수하는데 필요한 데이터 가공 인력도 줄어, 고객사 입장에서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죠. 저희는 작업의 전 과정을 프로젝트 리더(PL)들이 다 볼 수 있고, 작업 결과물도 샘플링 검수가 아닌 전수 검수를 고집합니다. AI어시스트가 공정을 줄여주고 나면 검수에 걸리는 시간도 늘어나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 중 데이터 가공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큰 분야는 자율주행이다. 사람 대신 AI가 운전하는 자율주행이 되려면 도로 사정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레이더, 라이다, 카메라 등을 통해 수집된 다양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야 한다. 에이모 역시 경기도 자율주행센터에 입주해 7개 스타트업들과 자율주행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센터 입주 스타트업들과 함께 세계 최대의 소비자 가전쇼인 CES에도 참여해 현장에서 이동하는 물체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술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 대표는 “당시 현장에서 해외 업체들의 관심이 뜨거웠지만, 계약 체결로 이어진 것은 해외 업체보다 CES에서 만났던 국내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에이모에 대한 인지도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해외 인지도를 보강하기 위해 에이모는 북미 시장 법인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정식 오픈은 미룬 상태다. 오 대표는 “코로나19로 런던, 일본 등의 AI 관련 행사가 온라인으로 변경되는 등 영향이 많다”며 “온라인 행사 참여를 최대한 많이 하며 기술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은 수년전의 핑크빛 전망과 달리 최근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2025년까지 완전자율주행시스템(레벨5)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그저 희망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오 대표는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시장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에이모의 성장에 대해서만큼은 자신했다. “AI라는 큰 생태계에서 데이터 가공은 잠시 반짝하는 업이 아니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지나가야 하는 구간입니다. 에이모가 늦지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압구정 단칸방에서 8명이 고생하면서 시간도 벌어놨고, 레퍼런스도 쌓았어요. 4년만에 직원 70명으로 고속성장한 것만 봐도 전망은 충분합니다. 저 없이도 회사가 돌아갈 정도로 맨파워는 탄탄하다고 자부합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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