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년 넘게 침수없던 마을…“天災지만 官 너무 안일, 화가 나 깬다”

지난 12일 경기 가평군 청평면 청평5리의 한 가옥. 이재민이 침수된 집 마당에 조리 도구 등을 씻으려 내놓은 모습. 주소현 기자/addressh@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가평)=주소현 기자] 장맛비가 잠시 숨을 고르고 오랜만에 해가 모습을 비추던 지난 12일 경기 가평군 청평면 청평5리. 주민 A(74)씨는 담벼락에 기대 놓은 대나무 돗자리를 걸레로 훔치며 “50년 전에 시집올 때 샀던 돗자리인데 당시에도 30만원 정도 비싸게 주고 샀다”며 “시커멓게 곰팡이가 슬어서 그냥 버리려다가 아까워서 다시 가져와 닦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 집도 어제 다시 쓰겠다고 가져가더니 다시 내놓았네. 물에 젖어서 못 써”라며 골목에 버려진 소파를 가리켰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폐기물 쓰레기부터 젖어서 못 쓰게 된 매트리, 소파 등이 나와 있었다.

21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지난 3일 성인 남성 어깨 높이까지 빗물이 들이찼다. 군청과 이장 등은 응급 수해 복구는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지만 살림살이를 모두 꺼내 하나하나 닦아 내고 있던 주민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A씨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하다 밤이 되면 마을회관에 가서 잠을 청한다. 온 집안이 빗물에 잠겼던 터라 곰팡이 냄새에 도저히 집에서는 잠을 이룰 수 없는 탓이다. 그는 “피곤한 데도 수해 복구를 생각하면 화가 나 벌떡벌떡 깰 수 밖에 없다”며 “회관에서 같이 자는 할머니들이 밤마다 어딜 그렇게 가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청평5리 주민들은 벽에 물이 찼던 높이를 가리키며 “내 얼굴이 다 잠기도록 빗물이 찼다.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면서도 “장독이며 키 큰 냉장고며 텔레비전이 둥둥 떠다니더라. 다 버리게 됐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2000년 청평5리로 이사 와 20년간 쭉 살고 있다는 주민 B(68)씨는 집안에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는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해도 그동안 잠기는 걸 본 적 없으니 설마설마했다. 집으로 물이 들어차고 나서야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침수로 생업마저 위협받는 주민들도 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B씨는 집안에 뒀던 악기는 물론 1000만원 넘는 우퍼들이 몽땅 젖어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는 “나는 지금 밥줄이 끊어진 상태다. 일이 들어와도 장비가 물에 잠겨 쓰지를 못한다”며 “정부에서 도와주는 걸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빗물이 빠져나간 집들은 아무리 헹궈도 악취와 습기는 남아 있었다. 주민 C씨는 “전국이 물난리인 건 알지만 방역부터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인들과 환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에 전염되면 속수무책이 될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그는 “빨리들 와 주면 좋을 텐데 안 오면 책임을 회피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청평5리 주택들은 강물이 넘친 게 아니라 배수가 안 돼서 침수됐다. 이 마을 바로 옆에는 1998년 ‘저지대 침수 방지’ 목적으로 지어진 배수펌프장이 있지만, 마을이 잠겼던 지난 3일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빗물이 흘러가는 관이 막혀 4단계로 작동돼야 할 펌프가 전혀 돌아가지 못한 탓이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이번 침수가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은다. C씨는 “결과적으로 관(官)이 안일했다”며 “자동화해 놨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펌프장이 지어진 지 오래됐으니 관(管)은 안 막혔는지 펌프는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침수 바로 전날 밤인 2일, 주민들이 아무래도 비가 많이 와 위험하다고 사람이 와 있으라고 했는데, 군청 직원은 전화 받아서 ‘걱정 말고 마음놓고 주무시라’고 했다”며 “빗물이 안 빠지니 3일에 주민들이 펌프장에 몰려가 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도 없었다. 빈집에 악만 쓴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경기 가평군 청평면 청평5리에서 만난 이재민들이 지난 3일 호우 당시 빗물이 차올랐던 높이를 가리키고 있다. 주소현 기자/addressh@heraldcorp.com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나 진정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민 D씨는 “주민자치위원회를 만들어서 청평5리 6반 21가구들이 모여 국가에서 주는 90만원(정부는 지난 12일 침수재난지원금을 200만원으로 올리기로 결정했다)을 보류하더라도 인재라는 상황에 맞춰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것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관에서 수백만원씩 쥐어 준다 하더라도 청소 비용으로 끝이다. TV고 냉장고며 세간살이 다시 마련하려면 몇천만원은 깨질 것”이라며 “천재(天災)를 어쩌겠냐만, 인재의 측면도 크다”고 입을 모았다.

가평=주소현 기자/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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