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칠성각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 [서울시 제공]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서울시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英祖)의 장손 ‘의소세손(1750~1752)’의 무덤인 ‘의소묘’ 원당(願堂)에 대한 실체를 밝혀준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봉원사 칠성각’을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2011년 ‘봉원사 칠성각’의 불단을 수리하면서 발견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서울시의 문화재 지정조사 과정에서 ‘건식 탁본’과 ‘자외선 촬영’을 진행해 정확한 각자(刻字)를 판독했다.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사변형(四邊形)의 형태로, 가로와 세로선대(갓)에 봉이 달려 있는 구조이다. 각판(알판)의 글자는 인위적으로 끌을 이용해 깎아냈고, 바탕칠 또한 도구를 사용해 강하게 벗겨진 상태였다. 각자 분석 결과 ‘의소제각(懿昭祭閣)’ 4자를 양각했음을 확인했다.

편액에 각자된 ‘의소제각’은 영조의 장손이며 정조의 동복형(同腹兄)인 의소세손의 명복을 축원하기 위해 건립된 전각을 뜻한다.

‘의소제각’은 의소세손의 신위를 모신 ‘신당(神堂)’으로 불리었고, 지금의 ‘칠성각’은 1864년에 새로이 중건되면서 붙여진 전각명이다.

‘신당’이라는 전각명은 사찰에서 흔하지는 않은 것으로, ‘봉원사의 신당’은 불교의 존상 대신 유교식 신위를 봉안한 건축물을 지칭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봉원사의 신당’이 ‘영조실록’에 기록 된 ‘의소세손의 원당’이자 ‘의소제각 편액’이 게시된 칠성각으로 파악된다.

‘봉원사 칠성각’은 ‘조선왕실 원당’을 목적으로 건축된 내력과 관련 유물(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남아 있는 서울·경기지역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왕실 원당건축 연구’의 기준작이 됨으로써 그 가치가 높다.

봉원사 칠성각. [서울시 제공]

서울·경기지역에 건립된 200여 동의 조선왕실 원당 가운데 ‘편액’의 실물이 발견된 사례는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유일하다.

조선시대 왕실의 원찰(願刹)로 알려진 사찰과 그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많지만, 원당으로 사용되었던 건축물이 확인된 사례는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 의성 고운사 연수전, 송광사 성수전 뿐이다.

더우기 서울·경기지역에서는 실제 원당으로 사용된 건축물이 지금까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 흥천사의 경우, 기록을 통해 1846년(헌종 12, 병오)에 나라의 축원장소로 칠성각을 세운 사실이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의 발견은 ‘조선왕실 원당’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희소한 사례로 평가된다.

또 ‘봉원사 칠성각’의 내부 ‘공간 구조’ 및 ‘장부 결구 흔적’을 통해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게시된 위치를 추정 가능하다.

현재 장부짜임에 설치됐을 시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종의 성수전(聖壽殿) 원당이었던 ‘순천 송광사 관음전 궁판’과 ‘고운사 연수전 편액’을 통해 유추해 볼 때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칠성각의 불단 전면에 감실 형태의 공간에 게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언제 훼손됐고, 왜 ‘봉원사 칠성각’ 불단 아래에 숨겨져 있었을까?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사찰의 조선왕실 원당이 폐쇄됐고, 관련 편액들이 모두 훼철됐다. 대표적인 사례인 ‘고종의 성수전(聖壽殿) 원당’이었던 ‘순천 송광사 관음전’ 전패(殿牌)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훼철돼 원형의 1/3이 훼손된 채 탁자로 개조됐다.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도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궤를 같이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봉원사 칠성각’이 조선왕실 원당이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이자, 원당 건축물의 편액 중 현전하는 극히 희귀한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봉원사 칠성각’은 서울·경기지역에서 조선왕실 원당 건축물로 확인된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왕실 원당의 건립과 운영을 알 수 있으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서울시는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봉원사 칠성각’을 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예정이다.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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