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또 파업…“아이 감기기운 있는데 병원 갈곳이 없네요”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 정책에 반발해 14일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지난 13일 오후 기준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3000여 곳 중 25%인 8300여 곳이 휴진 신고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집단 휴진은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 분만실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을 제외하고, 동네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와 대학병원 등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가 주로 참여했다. 이미 지난 7일 전공의들이 집단 휴진을 벌이며 단체행동의 포문을 열었고, 의협이 가세해 화력을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의협의 집단 휴진에 따라 일부 병·의원에서 인근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침부터 문을 연 병원을 찾느라 분주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송모(36)씨는 “오늘(14일) 아침 아이가 갑자기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단골 병원은 문을 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아이의 경우 병원에 민감해 갑자기 낯선 곳을 가기도 쉽지 않다. 지인들에게 적당한 곳을 수소문하는 중”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약사도 “오늘 파업이라서 사람이 이렇게 없나. 평소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오전 9시40분께까지 한명도 안 오는 건 드문 일이다”며 “(주민들이)파업인 줄 알고 알아서 (병원에)안 왔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집단 휴진이 길어질수록 환자들에게 타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서울 시내 병·의원 곳곳은 공식적으로 휴진하지 않더라도 17일 대체 공휴일을 붙여 휴가를 떠난 곳도 많았다. 특히 병원이 닫으면서 인근 약국까지 같이 쉬는 바람에, 일부 주민들은 연쇄적인 ‘의료 공백’을 느껴야 했다.

경기 고양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입주한 병원 4곳 중 2곳은 이날 휴가 상태였다.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의 경우도 입주 병원 5곳 중 3곳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 건물에 있는 약국 약사도 “우리 약국이 있는 빌딩이 병원들이 몰려 있는데, 다들 단체로 휴가를 가더라.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다만 종합병원의 진료 차질은 크지 않았다. 응급실 등 필수 인력이 근무하는 데다, 지난 7일 전공의 파업을 겪은 뒤 미리 이날 파업을 대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진료가 시작되는 이날 오전 8시30분께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외래 환자들은 “파업의 여파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석 달 만에 병원을 찾았다는 유모(60)씨는 “예전에 해 둔 예약이라 우연찮게 파업 날과 겹쳤는데, 진료가 지연된다거나 취소된다는 식의 공지는 없었다”며 “채혈을 하고 진료를 받기까지 보통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손모(51)씨도 “2주 전에 내원하고 채혈은 2개월 만에 하는데, 큰 차질은 없는 것 같다”며 “파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힘으로만 누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화나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향후 의협 주도의 집단휴진이 이어질 경우 지방을 중심으로 의료 공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충남 지역에 개원한 한 내과 전문의는 “며칠간 갈등하다 어제(13일) 오후에야 오늘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위·대장 내시경 환자가 수두룩한데, 오늘 하루 휴진하면 일정이 2~3주 밀릴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다음에 파업하면 ‘나도 나가 봐야지’하는 마음은 있다. 우리 지역은 평균보다 휴진율이 높은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진료하는 의료기관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각 시·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응급의료 포털과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응급진료 상황을 공유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날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문을 연 병원을 미리 확인해야 헛걸음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윤호·주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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