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클래식스 고문’ 문정재 “클래식이든 K팝이든 좋은 음악은 그냥 좋은 것”

피아니스트 문정재는 SM의 1호 클래식 연주자이자, SM클래식스 고문이다. 그는 "SM클래식스가 훌륭한 클래식 음악가를 발굴해 탄탄한 클래식 레이블로 성장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SM클래식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따르르르르르르르” 휴대전화 벨소리 같은 피아노가 경쾌하게 달려간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한 레드벨벳 ‘빨간맛’의 오케스트라 버전. 1절의 끝을 알리는 맑고 청아한 신호음은 피아노인데도 피아노 같지 않은 독특한 음색을 들려준다. 연주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문정재.

시작은 다르지 않았다. 여느 클래식 연주자와 같은 길을 걸었다. 일찌감치 피아노를 쳤고, 엘리트 코스(미국 줄리어드 프리 컬리지,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를 밟았다.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쌓으며 전 세계로 연주 여행을 계속 할 수도 있었다. 독일 활동 당시, 베를린 필하모니홀이 선정한 ‘올해의 젊은 연주가’였고, 볼로냐·두치·슈베르트 국제 콩쿠르를 석권했다. 모교인 하노버 음대에서 후학 양성에 한창이었다. 그런데도 문정재는 조금 다른 행보를 택했다. 그에겐 대다수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의 소속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인 명함. 문정재의 이름 뒤엔 ‘K팝 명가’ SM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SM클래식스 고문’이라는 직함이 따라온다. 그는 SM의 1호 클래식 연주자다.

문정재의 연주 인생엔 경계가 없다. 끊임없이 장르를 넘나들었고, 성실하게 벽을 두드렸다. “클래식이든 K팝이든, 결국 정말 좋은 음악은 그냥 좋은 거니까요. 굳이 둘을 구분할 이유가 없었어요.” 최근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문정재 고문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 고문과 SM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SM스테이션을 통해 플루티스트 김일지와 함께 연주한 음원을 발표하며 대중의 곁으로 다가왔다. 경계 없는 협업의 시작은 더 빨랐다. “어릴 때는 커리어를 쌓아야 하니, 20대 초반까진 콩쿠르에 전념했어요. 우승을 하면 연주의 기회가 생기고, 유럽 안에서 연주를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죠. 콩쿠르는 서른 초반까지 꾸준히 나갈 수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더라고요.” ‘재미있는 음악’을 하고 싶은 갈망이 자랄 때였다. 첫 협업은 영화 음악. “무슨 작품인지도 모른 채 작곡가와 인연이 닿아 실연자로 참여했어요. 어린 마음에 약간의 허세도 있고, 요즘으로 치면 ‘부캐’를 하나 만들었어요. ‘달제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었죠. (웃음)”

활동 반경은 점차 넓어졌다. 영화음악은 물론 레드벨벳 웬디를 비롯한 다양한 K팝 스타들과 협업했고, 재즈와 클래식까지 장르를 넘나들었다. “SM스테이션으로 많은 작업을 하면서 정통 클래식을 한 사람이 대중음악 쪽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주셨던 것 같아요. 처음엔 클래식 90, 대중음악 10이었던 비율이 점차 80:20, 70:30으로 달라지게 되더라고요.” 클래식 연주자의 삶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연주 활동을 하고 있고, 일 년에 150회 정도 연주를 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올해로 3년째 별마당 도서관의 음악감독을 맡아 다양한 연주와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 연주자나 장르의 음악이 문정재 음악감독의 지휘 아래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다.

피아니스트 문정재 [SM클래식스 제공]

엄숙한 클래식 계와 대중음악계를 오가는 협업이 처음부터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편견과 선입견도 있었다.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연주회를 연 적이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어요. 좋지 않은 평가도 있고요. 그런 건 어디에나 있어요. 누구나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계속 던지다 보면 마음을 열게 될 수도 있어요.”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양쪽을 오가자, 문 고문은 두 장르의 음악을 동시에 소화하는 아티스트로 자리하게 됐다.

물론 전혀 다른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 고문은 “클래식과 K팝, 재즈는 완전히 다른 언어”라고 말했다. “재즈를 처음 배울 때 피아노를 잘 치니 금방 할 거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클래식 피아노를 해온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었어요. 마치 어설프게 알파벳을 아는 상태에서 하는 것과 같았죠.” K팝도 마찬가지였다. “K팝에도 음악의 3요소, 리듬 하모니 멜로디가 똑같이 있지만 해석이 전혀 달라요. 클래식은 오래 전에 적어둔 것을 해석하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적 배경을 공부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옮기는 과정이라면, K팝은 창작이에요. 연주자에게서도 창의력이 나와야 해요. 클래식은 내 것을 없애기도 하고 절제하기도 하지만, K팝은 발산해야 하는 음악이더라고요. 이 부분이 힘들 때도 있고, 잘 될 때도 있어요. 전 클래식 쪽으론 많이 알고 있으니, 댄스와 K팝 DNA를 가지려고 노력 중이에요.(웃음)”

SM클래식스의 첫 출발 격이었던 ‘빨간 맛’은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시도에 앞장서온 SM의 도전으로도 주목받았다. SM과 서울시향의 만남에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국내 클래식계에선 서울시향을 향한 무한한 지지와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엔 같이 공부했던 단원도 있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연주자들이 많아요. 우려도 있었지만, 시향에서도 굉장히 열려있었고 시향의 팬들도 열린 마음이었어요. 제 연주회에도 시향 팬들이 오곤 하는데, 너무나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또 내달라고, 또 해달라고 할 때 뿌듯하더라고요.”

항해를 시작한 SM클래식스는 더 큰 바다를 향해가고 있다. 서울시향과 함께 한 ‘빨간 맛’, 종현의 ‘하루의 끝’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SM은 음악의 뿌리를 클래식이라고 보고, K팝과 클래식의 연관을 가져 생각한 곳이었어요. 처음 협업을 했을 때, SM이 정말 음악을 하는 곳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SM클래식스의 영역도 제한이 없다. 교육 사업, 음악 사업, 매니지먼트는 물론 K팝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대한민국의 클래식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톱이에요. 뛰어난 음악가들이 굉장히 많아요. SM클래식스에서 훌륭한 클래식 음악가를 발굴해 탄탄한 클래식 레이블로 성장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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