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영길의 법조 레프트훅] 범죄자 봐주고도… 큰소리 치는 조국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14일 공판에 출석하면서 작심한듯 검찰을 비판했습니다. 검찰이 자신을 권력형 비리범으로 몰았다면서 발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검과 동부지검은 이 사건 수사와 기소, 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 모든 과정에서 상호소통하고 수차례 연석회의를 열지 않았느냐.”

“감찰대상자가 감찰에 불응해 합법적 감찰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어 종료하고 사표를 받도록 종료한 게 범죄라면, 검찰에 묻고 싶다. 검사의 개인비리에 있어 감찰조차 진행하지않고 사표받은 사례는 무엇이냐.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선 불문복직 새 몽둥이를 휘두르고 내부비리에대해선 솜방망이조차 들지 않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지만 대검이 조국 전 장관 사건 수사방향을 서울동부지검과 논의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대검은 일선 검찰청을 지휘하는 기능을 맡습니다. 대검찰청이라는 조직이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수차례 상호소통하고 연석회의를 열었다’며 마치 부당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묘사합니다.

조국 전 장관은 막강한 권력 실세입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검찰 인사를 좌우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총장을 지휘하는 법무부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이러한 최고위 공직자를 수사할 때는 대검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연합]

◆여권의 ‘우리편’ 유재수, 도대체 뭐가 문제였나

조국 전 장관의 감찰 무마 사건은 친 여권 인사인 유재수를 봐줬다는 논란에서 시작합니다. 유재수는 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 때 경제부총리 비서관으로 일했고 재정경재부 서기관으로 근무한 경제관료입니다. 2004년 참여정부에서 제1부속실 행정관(부이사관급)이 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일을 맡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대통령 수행비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친분을 쌓았습니다.

경제관료로 성공하던 유재수가 논란이 된 건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서입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에는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었던 유재수가 유관업체들에 ‘갑질’을 한다는 제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두 아들을 미국 유학 보냈던 그가 금융업체들로부터 관련 비용을 제공받았고, 금융위 고위직 인사에도 관여한다는 비위 첩보였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유재수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비위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수사로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차량을 제공받고, 수삽차례 호화 ‘골프텔’을 무상으로 이용하며 고가의 골프채를 요구해 받아내는 등의 비위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자료가 나왔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의 고위 관계자들과 금융위 인사를 협의한 문자메시지도 확인됐습니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연합]

◆‘우리편이니 봐줘야 한다’ 구명운동 받아들인 조국

하지만 감찰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유재수는 여권 관계자들에게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 경력 때문에 보수정권에서 제대로 된 보직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국장이 됐는데, 갑자기 감찰을 받게 돼 억울하다, 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은 유재수 구명운동에 나섭니다. 백원우 대통령실 민정비서관, 천경득 총무인사팀 선임행정관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호소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여정부에서도 근무한 유재수를 왜 감찰하냐. 청와대가 금융권을 잡고 나가려면 유재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유재수는 참여정부 시절 우리와 함께 고생한 사람이다. 지금 감찰을 받고 있는데 억울하다고 하니 잘 봐달라.”

“유재수가 금융정책국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

이러한 실세들의 청탁에 힘입어 유재수는 감찰에 불응합니다. 특별감찰반의 자료제출 요구나 출석 요청도 모두 무시합니다. 감찰 실무자들은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감찰이 어려울 경우 수사를 의뢰하거나, 감사원 특별조사국 혹은 금융위 이첩 조치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러나 조국 민정수석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온다, 백원우 비서관과 유재수 처리를 상의하라.”

이미 적었듯, 백원우 비서관은 당시 유재수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입니다. 유재수를 봐줘야 한다는 사람에게 처리를 의논하라고 시킨 셈입니다. 결국 유재수에 대한 감찰은 중단됐고, 이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은 청와대를 나온 뒤 이 사실을 폭로합니다.

김태우 전 수사관 [연합]

◆‘사실’로 밝혀진 유재수의 범죄사실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구속기소된 유재수는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는 유재수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9000만원을 선고합니다.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을 뿐, 자산운용사 대표 4명으로부터 47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는 유죄판결이 났습니다.

형사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윤리적 비난이 가능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유재수의 동생은 한 자산운용사에 취업해 2년 동안 1억원이 넘는 급여를 받았습니다. 이 업체는 금융위원장 표창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유재수의 두 아들은 한 사모펀드 운용사에서 2차례 인턴십을 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이러한 부분을 “유재수가 이익을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며 책임을 묻지는 않았습니다.

법원은 유재수를 향해 “금융위원회 공무원인 피고인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의 운영자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표 받았다’는 조국, 사실은 영전 거듭한 유재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14일 공판에 출석하며 검사 비위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입니다. 도둑이 물건을 훔치다 잡혔다고 가정해 봅시다. 도둑이 경찰을 향해 “너희도 단속 정보 흘리고 서로 봐주지 않느냐, 나쁜놈들 아니냐”고 항의하면 그 경찰은 도둑을 놔줘야 할까요.

조국 전 장관은 유재수의 ‘사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금융위원회 사표를 낸 유재수는 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여당의 수석전문위원 파견은 형식상 퇴직일 뿐, 1~2년 근무한 뒤 다시 복직해 1급 공무원으로 승진하는 게 관례입니다. 이걸 가지고 ‘사표를 받았다’며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하는 조국 전 장관의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유재수는 이후 민주당 소속 오거돈이 부산시장이 되면서 경제부시장으로 발탁되며 영전을 거듭합니다.

[연합]

◆사실관계 다투지 못하는 조국의 큰소리

조국 전 장관이 감찰을 중단시킨 유재수는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고도 출세를 이어갔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국가 공직 기강을 확립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중요 보직입니다.

감찰을 부당하게 무마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 전 장관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직권남용은 선례가 많지 않아 유·무죄 판단을 가늠할 기준이 명확치 않은 범죄입니다. 요건이 추상적이어서 아예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조국 전 장관은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권 인사들이 전화를 걸어 ‘우리편이니 잘 봐줘야 한다’는 구명 청탁을 벌인 것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다만 조국 전 장관은 법리적으로 직권남용이 안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감찰권한은 민정수석의 권한이고, 감찰반원은 대상자가 동의하는 경우 감찰을 할 수 있을 뿐, 특별한 권한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즉, ‘민정수석이 감찰반원의 권한을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주장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유,무죄 판단에 대한 관측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공직자의 비위를 바로잡지 못하고 ‘우리편이니 봐준’ 결과를 초래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법리판단을 떠나 고위공직자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데도, 조국 전 장관은 검찰과 언론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12월 조국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뼈있는 지적을 던졌습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직권을 남용해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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