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상의 현장에서] 가해자만 있고 피해자는 없는 외교부

“외교부가 현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을 두고 우리 외교관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당연한 일이긴 한데 심정적으로는 ‘뉴질랜드 경찰이랑 현지에 있을 피해자가 참 고생하겠구나’ 싶어서 안타깝네요.”

최근까지 일선에서 외사업무를 맡았던 한 경찰 관계자가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외교관 성추행’ 사건을 두고 “피해자만 안타깝게 됐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근무하며 주한공관 직원들의 범죄사건을 여러 차례 처리해본 경험 끝에 내린 평가다.

단순 폭행부터 사기, 성범죄까지 외국 외교관의 한국 내 범죄는 대부분 ‘본국 송환’으로 끝난다고 한다. 본국으로 돌아가 징계나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사법 당국의 요청에 아예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인 우리 국민은 남아 있는데 가해자는 사라진 셈이다.

똑같은 일이 뉴질랜드에서 벌어졌다. 이번에는 우리 외교관이 가해자다. 외교부는 뉴질랜드 국적의 대사관 직원을 성추행한 A외교관에게 경징계인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뒤늦게 피해자의 신고를 받은 뉴질랜드 경찰이 수사 협조를 요청한 데 대해서는 비협조로 일관했다. 그간 ‘우방’임을 자랑했던 뉴질랜드가 한국에 화를 낼 만한 일이다.

결국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따지면서 ‘외교 문제’로 커졌다. 문 대통령은 “관계부처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처리할 것”이라며 진땀을 뺐지만 정작 외교부는 “사전 언급도 없이 정상 통화에서 따진 것은 ‘외교 결례’”라는 반응이었다.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이 직접 현지 언론에서 “경찰 수사에 협조하라”고 한 데 대해서는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며 오히려 으름장을 놨다.

외교부는 문제가 커지자 필리핀에서 근무 중이던 A외교관에 대해 ‘여러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귀임 조치했다. 외교부는 “특정인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혹시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교관 면책특권 포기 선례가 만들어지지 않을지 걱정하는 모양새다.

A외교관을 두고 외교부의 고심이 크겠지만 진짜 문제는 피해자에 대한 외교부의 걱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국적은 뉴질랜드지만 그도 우리 정부를 위해 한국대사관에서 일해온 직원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최근 통화에서 “현지 직원의 피해에 대해 외교부가 한 번이라도 언급한 적 있느냐”며 “외교부가 현지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라고 귀띔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피해자가 낸 진정에 대해 ‘인용(認容)’ 결정을 내렸다. A외교관에게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지만 외교부의 적절한 조치와 보호가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뒤늦게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이뤄진다는 점은 다행이다.

외교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