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행, 인력감축·디지털화…‘생존 몸부림’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사면초가에 몰린 유럽 은행들이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수익이 나는 곳에만 집중하면서 탈(脫) 글로벌 경영에 나섰고 인력도 구조조정에 맞춰 급격히 줄여나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의 HSBC, 네덜란드의 ABN암로,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 등 유럽 각국의 대표은행들이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고치고, 국외 점포를 철수하는 등 생존하기 위한 ‘공식’(fomula)를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HSBC는 아시아에 더 집중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이 은행의 본사는 영국 런던이지만 전통적으로 수익 대부분은 홍콩을 기반으로 한 아시아권에서 거둬왔다. HSBC는 인력의 15%를 줄인다는 목표를 토대로 유럽, 미국에서의 사업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ABN암로는 북서유럽에서의 사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호주, 브라질과 아시아 일부 나라까지 뻗친 기업금융 네트워크를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크레디트스위스와 UBS은행은 디지털 기술과 신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고자 관리인력 일부를 줄여나가고 있다. 프랑스의 BNP파리바그룹도 국외 사업을 축소하고 자국 내에서의 영업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세계 은행들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가 뿌리내리면서 수익방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WSJ은 지난 10년 사이 웰스파고 등 미국 은행들은 인력감축 등 고강도 구조개선을 벌였지만, 유럽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이에 소홀했다고 진단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단 설명이다. 유럽 은행들이 올 상반기 쌓은 대손충당금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시티그룹의 은행 애널리스트 로닛고제는 “유럽계 은행들이 수익성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주식시장에선 은행주를 향한 투자자들의 낮은 기대감이 드러난다. 지난달 말 기준 유럽 은행들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평균 0.45에 그쳤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유럽600(Stoxx Europe 600)은 올해 들어서 12% 가량 떨어졌는데, 스톡유럽600 은행 지수만 보면 하락폭이 36%에 달한다.

이미 ‘선택과 집중’은 유럽 은행들의 구조조정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접고, 인력 구조도 최대한 슬림하게 유지하는 식이다. 비용 절감을 촉진하는 ‘디지털화’는 모든 은행의 화두다.

특히 대부분의 은행들이 앞다퉈 국외에 진출하던 풍경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수년 간 신남방권 진출에 집중했던 국내 은행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로펌 코빙턴앤벌링의 파트너인 존아헌은 “코로나19 국면에선 (지리적 다양성의) 이점을 활용하기 보다는 너무 많은 어려운 시장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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