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도 없었던 ‘K팝 선구자’…“보아의 길이 K팝의 역사”

밀레니엄과 함께 가요계에 등장한 보아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온 ‘K팝 선구자’다. K팝의 역사는 보아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SM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밀레니엄’과 함께 ‘K팝 선구자’가 왔다. 2000년 8월 25일, 만 열세살. SM의 ‘비밀병기’였던 소녀의 등장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가수 보아(34·본명 권보아)를 따르는 수사는 수도 없이 많다. 그의 이름 옆엔 늘 ‘최초’, ‘최고’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국인 ‘최초’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한국인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역대 ‘최연소’ 가요대상 수상,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의 ‘최다’ 음반 판매량 기록.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보아가 가는 길은 K팝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며 “데뷔부터 지나온 20년의 음악인생에는 선구자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 열세 살의 보아는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로 가요계에 데뷔, 파워풀한 춤과 탄탄한 가창력으로 댄스음악계에 돌풍을 불러왔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초등학교 시절 SM오디션에 발탁된 보아는 3년간의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로 가요계에 첫발을 디뎠다. 만 13세, 한국나이로 열다섯의 보아는 몸이 부서질 듯한 파워풀한 춤과 탄탄한 가창력으로 댄스음악계에 돌풍을 불러왔다. 나이가 무색하게도 ‘완성형’에 가까웠던 어린 소녀의 등장은 다소 ‘경이’에 가까웠다. “보아가 없었다면 SM이 없다”고 했던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의 이야기처럼 이 소녀는 SM의 역사였고, K팝의 새로운 길이었다.

지독한 연습벌레였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치던 보아는 데뷔 2년차에 일본으로 향했다. 세계 2위 음악시장 일본에서 2002년 3월 발매한 첫 번째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는 유례없는 기록을 썼다. 한국인 최초 오리콘 일간, 주간 차트 1위. 당시 앨범 판매량이 120만장을 넘었다. 같은 해 한국에선 ‘넘버 원’ 앨범을 발매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 발매한 이 앨범으로 보아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가요계의 ‘넘버 원’의 자리에 올랐다. 그 해 보아는 열일곱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가요대상을 수상한다.

2003년은 ‘발렌티’(VALENTI)의 해였다. 일본에서 보아의 위상이 더 높아진 해이기도 하다. 현지에서 130만장이 팔린 이 앨범으로 보아는 일본에서 현지 가수를 못지 않게 사랑받는 한국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6집 ‘더 페이스’까지 보아는 총 7장의 음반을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며 J팝 스타이자, ‘아시아의 별’로 2000년대를 호령했다. 일본 최고 권위의 연말 가요축제 NHK 홍백가합전에 2002년부터 6년 연속 출전한 것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보아가 가는 길엔 늘 최초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보아는 한국인 ‘최초’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한국인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역대 ‘최연소’ 가요대상 수상,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 ‘최다’ 음반 판매량 기록 등의 새 역사를 썼다.[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미국 시장도 두드렸다. 보아의 미국 진출은 성과로만 보면 큰 성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9년 3월 발매한 미국 데뷔 앨범 ‘보아’(BoA)로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 127위로 진입하는 새 역사를 썼다. 한국 가수 최초의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이다.

보아의 일본과 미국에서의 음악 활동은 K팝 시장을 성장시킨 계기였다. 활동 당시 보아가 구축한 네트워크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이식됐다. 미국 시장 진출 당시 호흡을 맞춘 미국과 유럽의 유명 작곡가들이 SM 후배들의 음악(동방신기 ‘주문’, f(x) ‘핫써머’, ‘피노키오’)을 만들며 새로운 K팝 체계를 다졌고, 많은 안무가들이 보아 이후 한국에서 다양한 K팝 아티스트들과 작업했다.

2013년 보아의 국내 첫 콘서트는 SM엔터테인먼트 최초로 선보인 ‘밴드 라이브’ 무대였다. 보아의 이 콘서트를 계기로 국내 공연 문화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13년 국내 첫 콘서트에선 SM엔터테인먼트 최초로 ‘밴드 라이브’를 선보였다. 정민재 평론가는 “보아는 2003년부터 일본에서 밴드 라이브를 해왔다”라며 “사실 댄스 가수가 밴드 라이브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전자악기를 밴드 악기로 편곡하는 데다 춤까지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보아는 일본에서의 활동 경험이 발판이 돼 댄스가수가 ‘밴드 라이브’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완전히 새로운 공연 문화였고, K팝 공연의 새 이정표였다.

정 평론가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일본, 미국에서 총 19장의 앨범을 발매하는 동안 보아는 여러 면에 있어 선구자의 면모를 보여줬다”며 “해외 진출, 공연 문화와 인프라 구축 등 모든 영역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2년 발매한 한국 7집 ‘온리 원’은 보아 음악 인생의 첫 전환점이 된 앨범이다. 동명의 타이틀곡 ‘온리 원’은 보아가 작사, 작곡한 노래로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모았다. 보아 스스로도 자신의 명곡으로 꼽는 노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엇보다 보아의 존재와 의의는 아이돌 가수에서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음악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는 데에 있다. 10대였던 일본 활동 당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옮겼으나, 보아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2012년과 2015년이다. 2012년 발매한 한국 7집 ‘온리 원’에서 동명의 타이틀곡은 보아가 작사·작곡해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모았다. 이 곡은 보아가 자신의 ‘명곡’으로 꼽는 노래이기도 하다. 또 전곡을 작사·작곡·프로듀싱한 8집 ‘키스 마이 립스’(2015)는 보아의 음악적 성장을 보여준 앨범이다. 정 평론가는 “두 시기를 보아 커리어의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며 “보아는 자신의 앨범 전체를 혼자 만드는 댄스팝 가수다. 다른 장르와 달리 댄스팝은 트렌디함과 감각적인 부분이 중요한데, 보아는 7집부터 전권을 가지고 곡을 쓰고 앨범을 프로듀싱 해왔다. 댄스팝으로 시작한 가수가 음악적으로 이렇게 진화한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20주년을 맞은 지난 25일 팬들과 만난 네이버 브이라이브에서 보아는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악착같이 버텼구나 싶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며 “과거의 그 친구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더 좋은 노래로 인사드리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8년 서울 콘서트.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보아가 가는 길은 늘 새로운 길이었다. 그에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정민재 평론가), 함께 걸어갈 동료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래와 춤이 좋아 시작한 길”(보아 브이라이브)을 20년간 걸었다. 보아의 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무수히 많은 히트곡과 앨범을 낸 가수답지 않게 신보를 내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SM엔터테인먼트 따르면 지금은 20주년 앨범을 준비 중이다. “20주년 앨범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좋은 음악과 춤을 보여주겠다”(SM)는 생각으로 새 앨범을 작업하고 있다. 보아는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악착같이 버텼구나 싶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며 “과거의 그 친구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더 좋은 노래로 인사드리겠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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