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세 아지매 아시나요…자갈치,깡깡이아지매, 그리고..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자갈치 아지매’는 부산 지역방송의 장수 프로그램 제목일 정도로 유명하다. 수산물 시장에서 바지런하게 움직이며 한국전쟁의 혼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국제도시 부산의 기틀을 닦은 억척 여성들이다.

‘깡깡이 아지매’는 자갈치 시장 건너 영도 조선소 주변, 조선업 허드렛일을 하던 여성들이다. 남편이 어로나 지겟꾼으로 나가면, 부인은 배 만들면서 용접할때 남은 찌꺼기 ‘슬래그’를 망치로 ‘깡깡’ 쳐서 떼어내는 노동자들이다. 철근을 용접한뒤 다듬어 만든 T자형 망치를 들고 다녔다.

깡깡이 아지매 벽화
재첩 채집은 아저씨가, 국요리와 판매는 아지매가 맡았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어부, 지겟꾼, 자갈치시장사람들 부산역 나그네들의 속을 풀어주던 아지매들이 있었는데, 바로 재첩아지매들이다.

“재칫국 사이소!”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사는 자그마한 갈색 조개로, 부산의 젖줄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어획되는 식재료이다.

▶재첩국= 국립민속박물관 황경숙 연구원은 낙동강 강변마을을 직접 발로 뛰며 추적해서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80년간 진행된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잡이의 변화에 관해 탐구했다.

‘재첩국’은 돼지국밥, 밀면 등과 함께 폐허를 마천루로 만든 부산에너지의 원천이다. 수산업, 공업, 물류 노동자들 뿐 만아니라 나이가 좀 있는 부산 사람들은 전날 약주를 마셨으면 다음 날 아침 해장으로 꼭 재첩국을 먹었다. 재첩이 간을 이롭게 하고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이 재첩국의 원료인 재첩은 국산이라 해서 섬진강 재첩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국산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부산 ‘원조’ 재첩의 최대 산지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낙동강 하구로, 이곳 사람들에게 재첩은 곡식이나 다름없었을 정도로 소중했다. 맛도 맛이지만, 이 재첩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재첩을 ‘기수재첩’이라 하며, 민물에 사는 참재첩인 ‘골조개’와 구분된다. 골조개는 비린 맛이 강하고 질겨 낙동강 하구와 부산 경남 사람들은 잘 먹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과 부산광역시(권한대행 행정부시장 변성완)는 ‘2021 부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부산의 특색있는 문화를 조명한 주제별 조사 보고서를 냈다.

아미동 비석마을

재첩국 이야기 외에 아미동 이야기: 포개진 삶, 겹쳐진 공간(우신구 연구원), 길이 만든 부산(차철욱 연구원), 국제시장(오세길 연구원),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 사람과 공예기술(이현주 연구원) 등 5편이다.

▶아미동= 아미동은 감성의 가장 깊은 곳을 후빈다. 피란민들 중 가장 늦게 부산 온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산 꼭대기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산 동네이다. 무덤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끼니때마다 깨끗한 물을 떠놓고 잠시 영령을 위로한뒤 밥을 먹었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시대 살던 사람일지언정, 위령탑을 지었다. 일본인들이 그 산꼭대기까지 찾아와 매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 아미동의 번영을 함께 기원한다고 한다.

아미동은 부산의 개항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에 살았던 사람들, 부산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 부산을 둘러싼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시대적 변화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피란민들이 천막집과 판잣집으로 얼기설기 지어 살았고, 산업화시대에는 판잣집을 헐고 시멘트 블록집을 지었다. 사람들은 비석을 주택 현관 계단, 석축의 귓돌, 가스통 받침, 생활용품 받침 등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다.

김정하(한국해양대)는 이러한 아미동을 가리켜“일본인에게는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경계였고, 이주민에게는 농촌에서 도시로 들어서는 경계였으며, 피란민에게는 타향과 고향의 경계”라고 말했다.

좌천동 자개공방

▶좌천동 자개골목= 좌천동 자개골목은 부산의 공예산업을 부흥시켰던 본산지이다. 이 자개골목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공방인 ‘일호공예’와 평생을 자개와 함께 살아온 절삭공 이일환 등 자개골목의 화려했던 명성을 간직한 채 아직도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을 민속박물관 연구진들이 만나보았다.

영남 지역에서 ‘나전칠기’하면 대부분 통영을 떠올린다. 조선시대 12공방이 있었던 통영에서 생산되는 나전칠기는 전국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80년대 정부의 산업경제부흥과 수출진흥정책에 맞물려 나전칠기 가구로 남부지방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은 부산 좌천동 자개골목이었다.

자개를 엷게 만드는 섭패, 실처럼 잘라 만드는 절삭, 문양을 만드는 조각 등의 공방이 150여 집 이상이 촘촘히 들어서서 거리를 형성했을 정도였다.

통영은 인구 규모가 작아 분업화된 기술을 보유한 인력확보에 한계가 있었고, 고급 가구인 나전칠기의 수요층도 많지 않았다. 반면에 동래, 부산, 좌천동은 나전칠기의 자생적 토양의 기초 위에 국제적 해항도시로서 국내외 수요와 운송의 측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에 통영을 포함한 영남권의 나전 공예인력들을 대거 흡수하였다.

부산역 일대

▶모든 길은 부산에 닿는다= 길이 만든 부산은 부산과 외부로 통하는 ‘길’을 매개로 부산의 변화를 바라본 보고서이다. 부산은 한반도의 끝이기도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이기도 하다.

경계로서의 부산은 다방면과 소통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길’을 통해 사람, 물건, 문화가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유기적으로 변화해온 부산의 모습을 담았다.

영도에는 호남 중에서도 완도 청산도와 고흥 나로도 사람들이 특히 많이 산다. 이들은 대개 일제강점기부터 발달한 수산업과 해운 항로를 통해 부산에 정착하였다.

1950년대 저인망 어업으로 나로도에서 어획된 수산물은 부산 어시장에서 판매되었는데, 선주들은 어로 준비와 판매망 확보를 위해 부산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먼저 정착한 선주들은 고향 인맥을 통해 고향 사람들을 불러 선원으로 승선시켰고, 선원의 이주는 다시 가족을 동반하였다.

국제시장

▶영화같은 현실 국제시장= 75년 역사를 가진 국제시장의 역사, 시장을 이끄는 상인조직인 번영회를 살펴보고, 10개 점포를 중심으로 국제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이번 민속보고서에 담았다.

또 국제시장에 인접한 부평깡통시장, 만물의 거리, 아리랑거리, 신창상가(케네디 시장)를 소개했다.

국제시장 번영회에서 발간한 1982년, 1990년, 2004년 상가 전화번호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섬유류, 일반 잡화류, 철물·기계 공구·전기 용품류, 양품 잡화류, 주방 기구·칠기 제품류, 건어물·청과·기호품류 등 여섯 가지 유형이 국제시장의 대표 품목으로 손꼽힌다. 물론 대표 품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일반 잡화류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가방과 문구류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급부상한 품목은 민예품과 전통 공예품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관광객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깊다.

지역민속문화의 해 사업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추진하는 지역 민속문화 활성화 정책이다. 체계적 현장 조사와 연구, 특별전과 학술대회 등을 통한 민속문화 자원화와 국내외 홍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부산광역시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부산 영도와 가덕도 조사, 동제 전수 조사, 한국민속학자대회, 부산 특별전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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