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험한 역사 세탁 ‘성락원’ 폐기, ‘성북동 별서’로 명승 재지정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앞으로 서울 성북구 선잠로2길 47번지에 있는 친자연 한국식 정원은 ‘서울 성북동 별서’로 불린다. 아울러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폐기된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 분과는 26일 심의를 열고, 명승35호(성락원)로 지정됐던 것을 명승 해제하고, 해당 문화재를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명승 118호에 지정했다.

성북동 별서는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친자연 한국정원이다. 1992년 사적 제378호로 지정했으며, 관련 법률이 개정된 이후 2008년 명승으로 재지정됐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될때 관련기록이 허위로 판명되면서 이름이 바뀐 것이다.

1만4407㎡(4365평)이라는 넓은 생태지역에 쌍류동천(雙流洞天)과 용두가산(龍頭假山)이 있는 전원(前苑), 영벽지(影碧池)와 폭포가 있는 내원(內苑), 송석(松石)과 못이 있는 후원공간 등으로 꾸며져 있다.

두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고, 곡류를 빚어내는 작은 산이 버티고 있으며, 주변엔 수많은 식물들이 도심 답지 않게 건강하게 자라며 풍취있게 만들어진 인공폭포가 있는 곳이다. 미학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나 매우 의미있는 자취였다.

문제는 지정당시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沈相應)의 별장을 의친왕이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라는 문구에서 철종때 심상응이라는 이조판서가 유령인물이라는 것이다.

수년간 많은 학자들이 “그런 자가 없다”고 지적해도 문화재청은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공공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지적하고 마침내 2019년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면서 그제서야 문헌고증을 거쳐 허위임을 입증했다.

누가 무슨 의도로 유령 역사인물을 내세워 이 건물의 정체성을 ‘세탁’했는지, 문화재의 사유화를 도모했던 것은 아닌지, 서류 조작에 따른 다른 이득은 없는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쩌면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삼정의 문란, 매관매직, 족보세탁 등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명의세탁자, 권력자, 적발되지 않은 도굴꾼 등에 의한 왜곡이 있었을까 걱정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미 지정된 별서정원 22곳 전체에 대해 역사성 재검토에 착수했다.

abc@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