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농산물 유통에는 ‘과학’이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 우물이 그 역할을 했다. 수박이나 열무김치를 두레박이나 끈으로 연결해 물에 담가두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우물물이 김치는 더디 익게 하고, 수박은 더 달콤하게 해주었다. 추억으로 남은 풍경이지만 나름 과학적 원리가 깃든 보관 방법이다.

저장유통의 기술이 진일보한 요즘엔 산지에서 생산한 수박이 덥고 습한 날씨에도 신선하게 유통된다. 수박 한 통뿐일까. 익는 시간이 제각각인 과일이 한데 모여 ‘컵 과일’, ‘조각 과일’이란 이름으로 팔린다. 전문용어로는 ‘신선편이 과일’이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고, 편리성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이 확산하면서 신선편이 농식품의 수요는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신선편이 식품 시장 규모는 2018년 8089억원에서 2019년 9364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성장세는 수확 후 관리기술과 가공 기술 발전이 한몫을 차지한다. 한 예로 사과를 잘라 포장한다고 해보자. 제일 먼저 색이 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농산물은 수확 후에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노화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포장재와 온도, 여기에 함께 담기는 다른 과일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돼 과학적 포장이 이뤄진다.

수확 후 관리기술을 통한 신선도 연장은 먼 나라까지도 농산물 수출을 가능하게 한다. 2018년 농림수산식품 수출은 전년보다 1.6% 증가한 93억 달러로 3년 연속 늘었다. 딸기 수출액은 전년 대비 14.4% 증가했고, 사과, 배, 감귤도 수출이 늘었다. 주요 품목뿐 아니라, 독특한 모양의 노란 참외, 색이 선명한 파프리카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수출에는 반복적 실험을 통해 품목별로 체계화된 기술이 적용된다. 딸기는 예비 냉장을 한 뒤 이산화탄소와 이산화염소를 처리하고 기능성 용기에 담는다. 포도는 기능성 용기 포장과 함께 유황 패드 등 활용해 유통기간을 연장했다.

우리나라에 수확 후 관리 기술이 들어온 것은 집마다 냉장고가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이다. 처음 기술이 도입됐을 때에는 국내 연구가 부족해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을 그대로 적용했다. 원예작물 수송에 며칠이 걸리는 미국과 달리 수확 후 3~5일 안에 소비되는 우리의 유통 현장은 이와 달라 초기에는 현장에 기술이 온전히 적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형 수확 후 품질관리기술을 정립하게 됐다고 본다.

농촌진흥청은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품목별로 고도화된 맞춤형 수확 후 선도유지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신선편이 농식품 시장처럼 새로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출국 다변화에도 힘쓸 계획이다. 아울러,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신선도 저하로 부패할 때 생기는 몸에 해로운 미생물 발생도 줄여 소비자가 더 안전한 농산물을 섭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황정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