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의 서원을 가다] 장성 필암서원, 솔숲 사이 기품 흘러

소나무 숲 흐르는 해자의 물소리, 격조 높은 고요함 일품

필암서원
작은 해자가 둘러싼 필암서원은 소나무 숲에 안겨 있어 격조 있는 고즈넉함을 풍긴다.<사진=이명애>

유네스코가 지정한 한국의 서원 9곳은 경북(대구 포함) 5곳, 경남 1곳, 전북과 전남에 각각 1곳, 충남 1곳이다. 경북의 세 곳, 소수서원과 도산서원, 병산서원을 다녀온 후, 호남 지역의 서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이렇게 해서 찾아간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은 건축이나 그 크기 보다 마을 지역과 한데 이뤄진 역사와 문화로 호남의 서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번주에는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을 다녀왔다. 장성으로 가는 길은 주룩주룩 내리는 장맛비로 제대로 운전을 하며 찾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국에 호우 경보가 내리고 하늘이 구멍 뚫린 듯 비를 쏟아 부었다. 폭우가 유난스럽게도 온다. 하필이면 이런 장마 구간에 일정을 잡았을까? 안타까우면서도 일정의 빡빡함에 취소할 수도 없다. 다행스럽게 장성을 향해 가는 길에 내리던 비가 장성군으로 들어서자 잦아들었다.

장성 곳곳에 노란색이 유난스럽게 눈에 많이 띤다. 이게 뭐지? 길을 지나치다 보니 ‘옐로우 시티, 장성’ 이라는 슬로건이 이곳 저곳 많이 등장한다. ‘왜 옐로우지?’ 궁금해하며 필암서원에 도착했다.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 비가 필암서원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아예 그쳤다. 다행이다.

얼른 카메라를 챙겨 차를 내린다. 근데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무리 비가 온다지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천천히 서원 앞으로 향해 걸어가고서야 알게 됐다. 코로나 19로 7월 15일부터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 포스터가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붙어 있다.

origin_필암서원
<사진=문화재청>

아, 이를 어쩌나? 머나먼 미국 땅,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필암서원을 보러 왔건만….(물론 꼭 이 이유만은 아니지만)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선정된 다른 서원들은 모두 문을 열고 나를(?) 맞아주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다시 문을 열어줄 것도 아닌 이상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시켰다.

비 자작하게 오는 이런 날, 서원을 찾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얼마나 호젓하고 여유롭고 사색을 즐길 수 있었든지…. 필암서원을 둘러싼 도랑이 작은 해자(垓子)처럼 서원 주위를 흐르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로 흐르는 수량이 많아지면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경쾌한 음악처럼 시원하게 들린다. 여기에 서원을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는 묵직한 소나무숲까지 격조 있게 품위를 지키며 나를 맞아주었다.

청자연 밥상
장성 유명 한식당 청자연의 밥상<사진=이명애>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산책했다. 서원의 작은 해자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비에 젖어 촉촉해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이 샘솟는다. 필암서원의 내부 모습은 다음번 장성 여행에서 목마름을 해소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해본 장성을 아쉽게 나마 돌아보기 위해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점심을 하기로 했다. 장성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던 한식당이다. ‘청자연’-. 이곳에 전화를 하니 예약이 필수란다. 두 사람 예약을 하고 부지런히 차를 운전해 찾아갔다. 긴장과 배고픔에 기다리던 밥상이 나오자 그 정갈함과 단정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장성은 이런 곳인가? 흔히 전라도 식당에 가면 한상 딱 벌어지게 차려 내놓는 그 수많은 반찬에 기가 확 질리곤 했었는데 이곳 장성의 식당은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 되는 그런 정갈함과 단정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 번 장성 여행을 다시 한번 기약하며 점심을 먹으면서도 다음에 장성을 방문하게 될 때에 어디를 가면 좋을지 검색해본다. 넉넉하게 날짜를 잡아서 △장성호수변길 △황룡강 꽃강 △축령산 편백숲 △백양사 그리고 필암서원까지 꼼꼼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가만 보니 이 코스는 가을 여행이 제격이겠다. 때깔 고운 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에 축령산 편백숲, 황금빛 출렁다리에 드넓은 호수가 이어질 장성호수변길, 노란꽃잔치가 열리는 황룡강 꽃강까지…. 가을에 눈호강 한번 제대로 해볼 참이다. 그래도 필암서원은 한번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장성=이명애/서울 지사장

장성군 노란꽃축제
장성군에 들어서면 노란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장성군 홈페이지>

필암서원

필암서원2
<사진=이명애>

필암서원은 1590년(선조 23년) 기효간, 변성온, 변이중 등 호남 유생들이 성리학자 김인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됐다. 김인후는 조선 12대 왕이었던 인종을 가르치던 스승이었다.

이후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된 후, 1624년(인조24년) 황룡면 증산동에 복설됐고 1659년(효종10년) 사액을 받았다. 이후 1672년(현종 13년)에 수해로 인해 현재의 위치인 필암리로 이전 건축됐다.

인종의 스승이었던 김인후 선생은 도학과 절의, 문장에 모두 탁월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인종이 스승을 사모함이 얼마나 깊었는지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김인후에게 직접 그린 ‘묵죽도’ 목판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는 필암서원이 보관중 도난 당한 후,다시 제작하여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또한 필암서원의 문루인 확연루(廓然樓)는 정면 3칸, 측면 3칸, 상하 18칸의 2층 기와집으로 지어져 두 차례에 걸쳐 중·개수됐는데 문루의 편액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보물·문화재로 지정된 목판, 문서 등 조선시대 서원 운영과 선비 교육에 관한 중요한 기록·사료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1975년 4월23일 사적 제 242호로 지정됐다.

-출처 : 장성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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