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수소경제 첫발 인프라 구축

필자가 거주하는 작은 아파트 단지에 수소 자동차가 두 대나 있는 것을 보고 생경함을 느낀 것이 작년이었다. 최근에는 아직 단 한 대의 완성차도 판매하지 못한 미국의 수소 상용차 업체 ‘니콜라’가 지난달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주식 5위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수소 기술에 대한 큰 기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수소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우리 삶에 다가오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를 이용한 자동차 및 분산발전에 이어, 최근에는 수소를 가스터빈, 보일러 등 기존 발전플랜트의 연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수소를 활용하기 위한 생산에서 저장, 운송, 공급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가운데 최근 국민의 관심은 삶과 밀접한 활용 분야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수소 경제 구현을 위해 무엇보다 선결돼야 할 것은 ‘수소 인프라 구축’이다. 향후 수소 에너지를 석유, 전기 같은 일상적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급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정부의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르면 오는 2022년까지 수소 공급가격을 ㎏당 6000원까지 낮추고, 전국에 310개의 수소 충전소가 구축된다. 여러 지자체도 ‘수소 경제 선도 도시’를 자처하며 수소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기업도 수소 인프라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효성은 지난 4월 세계적 수소 기업인 독일 ‘Linde’와 손잡고 3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 수소액화플랜트를 건설하겠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기업으로서는 빨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기반 역량을 갖춘 해외 선도기업과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좋은 방안일 수 있지만, 향후 기술 자립을 고려하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인프라는 한번 구축되면 기술 예속의 지속력이 매우 강하다. 우리는 선진 기술의 도입과 시장 진출을 위해 해외 선도기업과 손잡았다가 결국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해외 기술에 휘둘리는 상황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최근 카타르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선 100척 수주의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의 LNG선 세계 점유율은 90% 수준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지만, 이 소식에 환호하는 해외 기업이 따로 있는 것은 잘 모른다. LNG선의 핵심인 화물창 설계를 위해 해외기업에 선가의 약 5%를 로열티로 주고, 주요 장비의 86%는 해외로부터 조달한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큰 혼란을 겪었던 것은 기반 기술을 외국에 의존해온 탓이 크다. 비슷한 우를 수소 경제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수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이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계연은 수소 액화 및 액체수소 공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액체수소는 기체수소 대비 약 800배의 밀도로 대용량 저장과 운송에 효율적이고 대기압 상태에서 저장해 안전성에서도 강점이 있다. 또한 고효율의 수소 연료전지-엔진 하이브리드 시스템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제안했고 수소연소 가스터빈 개발, 수소부품 신뢰성평가 등 본격적인 수소 경제 시대를 준비하는 연구에 산학연이 함께 매진하고 있다.

지금은 사업적 경제 논리에 따라 얼마나 많은 인프라를 더 빨리 구축할지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긴 안목으로 기반 기술을 확보하며 차근차근 피라미드를 쌓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수소 기술은 세계적으로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우리에게도 기회가 열려 있다.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고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수소 경제는 바로 이런 시선으로 미래를 준비할 때 탄생한다.

박상진 한국기계연구원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