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실탄 잃은 중앙은행…역할론 변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7일(현지시간) 2%의 평균물가안정 목표제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 속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가 주목되고 있다. 과거 물가 상승을 방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여왔던 연준이 30년 전통을 깨트리면서까지 물가 상승을 용인하고 나선 데는 저금리·저물가 시대를 맞아 새로운 경기 부양 동력을 얻기 위한 고민이 녹아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최근 몇 년 제로금리 기조를 이어가면서 금리인하를 통한 통화정책 능력을 상실한 가운데, 연준의 이 같은 변화가 유럽중앙은행(ECB)를 비롯해 다른 중앙은행의 정책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높다.

이날 연준은 성명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평균 2%의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하겠다”면서 사실상 물가 상승을 용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너무 낮은 물가가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 인플레이션 목표에 집착하느라 전례없는 실업상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앙은행의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물가 안정 대신 대신 연준의 영역 밖으로 여겨져 온 고용시장의 완전한 회복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다.

연준의 평균물가안정 목표제 도입은 장기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중앙은행의 역할을 둘러싼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낮은 금리 속에 중앙은행들이 차입 비용을 줄이고 고성장을 촉진할 실탄이 줄어들면서 장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도전 속에 파월이 정책 쇄신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힘을 잃고 있음을 지적해왔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가들은 지난해 말 ‘양적완화 실패 혹은 통화정책의 무력화’에 대해 경고했고, 모마 가즈오 전 일본은행 통화정책 이사도 “통화정책의 실효성은 앞으로 분명히 제한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세계 경제를 집어삼킨 코로나19 사태는 연준의 변화를 부추겼다. 우려대로 중앙은행 주도의 통화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코로나19 확산 속에 세계 경제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실제 연준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0%~ 0.25%로 대폭 인하하고 이후 기준 금리 동결과 자산 매입을 이어가는 등 경기 회복에 총력을 기울었으나 고용시장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8월 16일~22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100만건으로, 2주 연속 100만명대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의 발표가 다른 중앙은행들의 연쇄적인 변화의 움직임으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악시오스는 “연준의 결정은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연준의 급진적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면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유사한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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