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의 현장에서] “올해는 잃어버린 1년”…멈춰버린 경영시계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가 없네요. (해외사업 투자 관련) 타당성 평가도 해야 하는데 선뜻 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경제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뛰어든 건데 불과 몇 달 사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연초 국내 한 에너지기업은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3000억원이 넘는 대형 투자건이었다. 반년이 지난 현재 아직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언제쯤 사업이 가시화될지 시기조차 장담하지 못했다.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보고 투자 결정을 했지만 코로나19로 저유가 국면이 길어지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진행될 경제성 평가 결과에 따라 투자계획이 뒤바뀔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투자 지연보다 더 급한 건 해외에 신규 공장을 지어놓고 가동조차 못하는 기업들이다. 한 화학소재기업은 연초 미국 남부에 생산시설 건설을 마무리 지었다. 곧바로 가동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가동 전 시범운전을 진행할 기술자들이 현지에 입국 못 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회사 관계자는 “연초 가동이 목표였던 사업계획이 연내 가동으로 바뀌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 언제쯤 될 것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고 토로했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중국에도 공장을 완공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생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3년에 걸쳐 지은 공장이 드디어 올해 본격 가동으로 빛을 보리라 기대했지만 요원하기만 하다. 그저 올해 안으로만 가동이 가능해지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을 뿐이다.

산업계는 이처럼 코로나19로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경영 환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2020년을 앞두고 각 기업들이 세운 신년 경영계획은 사실상 백지 상태가 됐다. 계획대로라면 연초부터 생산을 시작해야 했던 공장은 아직 가동조차 못하고 있고, 회사의 장기 비전이 축약된 투자계획은 흔들리고 있다.

상반기의 충격을 남은 하반기에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품었지만 최근 코로나19가 2차 유행에 접어들면서 그마저도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연간계획이 뒤틀리면서 2020년은 기업들에 ‘잃어버린 1년’이 될 것이란 자조 섞인 전망이 나온다.

기업의 경영시계가 멈춰 버린 반면 정가의 시계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5일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법안에 담긴 내용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거론됐던 기업 규제안들로,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법 개정 추진 시기를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활동이 멈춰 버린 이때, 유독 해당 법안들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전례 없는 변수에 투자도, 공장 가동도 멈춰 버린 올해, 규제 리스크까지 덮친다면 기업의 경영시계 작동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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