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자료까지 터는 檢…‘기업 준법경영’ 힘뺀다

장기간 이뤄진 삼성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계기로 ‘변호사-의뢰인 비밀공개거부권(Attorney-Client Privilege·ACP)’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준법경영을 위해 상담한 법률 자문 내역이 거꾸로 수사 자료로 활용되는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1년 8개월간 먼지떨이 수사…법률자문 관리 법무실도 압수수색=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는 1년 8개월간 이뤄졌다. 검찰은 삼성을 상대로 50여차례 압수수색을 벌이고 경영진 30여명을 100여 차례 소환 조사했다. 압수수색 장소에는 법무팀이 대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8년 9월 핵심 경영진이 무더기 기소된 ‘삼성 노조와해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발부받은 영장에는 ‘법무실(법무팀, 해외법무팀)과 이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부서’가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해당 영장을 통해 ‘경영지원실장(CFO) 보고’ 문건을 압수했다.

문제는 이러한 법무팀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이 기업의 준법경영 노력을 오히려 무력화 시킨다는 것이다.

ACP 도입을 연구해온 법무법인 한결의 안식 대표변호사는 “검찰에서 2016년 8월 롯데 수사 할 때 법무법인 율촌에 대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때 대한변협, 서울변회에서도 성명 발표하니까 검찰에 밝히길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고, 앞으로 이럴 일 가능성이 없다. 너무 우려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런데 지금 검찰은 물론 금융감독원, 국세청 같은데서도 법무팀을 상대로 로펌에게 받은 자문내역을 다 내놓으라고 하며 상례화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완근 사내변호사회 회장도 “예를 들어, 대리점 밀어내기가 문제가 된 유통업체가 있을때 다른 경쟁회사들은 자기네 회사에는 문제가 없는지 점검을 해봐야 한다”며 “대리점과 약관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서 준법경영을 하려고 하는데 그 자료를 가져가서는 각종 행정 조치를 취하는 근거로 삼는다”고 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약업계 리베이트를 조사할 때 이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제약회사의 법무팀을 찾아 영업부서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입수한 뒤 리베이트 관행의 근거라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러한 검찰의 수사 및 행정기관의 조사 관행에 대해 ‘외국이면 상상도 못할 방식’ 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업에서 준법경영을 위해 여러 사안들을 검토했고 시행했으나 일선 조직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미비한 점이 발견됐다면, 외국의 경우엔 선처의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엄벌의 근거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법률자문 수사에 역이용 금지’ 제도, 20대 국회에선 도입 무산=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변호사법 개정안에는 ‘누구든지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리에 이뤄진 의사교환 내용, 또는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작성한 법률자문 등 자료에 대해 공개를 요구하거나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문이 포함돼 있다.

다만 이 경우도 ‘의뢰인의 승낙이 있거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하는 단서를 달았다. ACP가 도입된다면 기업 법무팀이 가진 정보를 활용한 수사는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이 변호사는 “외국은 변호사 조직이 법률적 이슈를 검토한 사안에 대해서 행정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해 수집한 자료는 행정절차나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호인의 의견을 강요할 경우 처벌까지 할 수 있다. 준법경영을 살리기 위해선 검찰의 수사관행이 우선 근절돼야 하고, 한국형 ACP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진원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