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왕 4명만 60세 넘겨, ‘명예의 전당’ 기로소에 등재됐을까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조선시대 임금의 평균수명은 만46세이다. 양반들보다는 10여년 덜 살았고, 집권세력과 양반들의 핍박 갖은 속에 살던 상민·천민들과 비슷한 기간의 생애를 살았다.

원인은 불결한 위생, 비만 및 당뇨, 여색 등으로 분석되는데, 그러다 보니 60세 이상 현역 국왕이 등재될수 있는 군신 리더들의 명예 전당 ‘기로소(耆老所)’에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밖에 오르지 못했다.

정종과 광해군도 살기는 환갑을 넘겼지만, 현역 국왕이 아니어서 기로소에 오르지 못했다.

기로소에 왕이 오를수 있는 커트라인은 60세이지만, 왕보다 평균수명이 길었던 정2품 이상 관료의 등재 커트라인은 70세였다. 이미 이런 기준의 차이를 둔 걸 보니, ‘왕 되면 오래 못산다’는 얘기가 당시에도 정설이었던 듯 싶다.

의성 고운사 연수전의 빛나는 금단청

의성 고운사 연수전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여 1904년에 세운 기로소 원당으로, 고운사 내에 있던 영조의 기로소 봉안각의 전례를 따라 세워진 대한제국기의 황실 기념 건축물이다. 사찰 본체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청 31일 이 연수전(延壽殿)을 보물 제2078호로 지정했다.

연수전은 무엇보다 화려한 금단청을 한 게 눈에 띈다. 천장에는 다른 곳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용과 봉, 해와 달, 학과 일각수(一角獸, 유니콘과 비슷한 상상 속 동물), 소나무와 영지, 연과 구름 등 다양한 주제의 채색 벽화가 가득하다.

솟을삼문 형식의 정문인 만세문과 사방에 담장을 두어 사찰 내의 다른 구역과 구분되는 독립된 구획을 이루고 있다. 본전 건물은 3단의 다듬은 돌 석축 위에 있으며, 정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정사각형(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이다.

규모는 작지만 황실 건축의 격에 어울리는 격식과 기법, 장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 높은 건축물로 평가된다.

한 가운데 자리한 중앙 칸을 어첩(御帖) 봉안실로 삼았고 둘레에 퇴(툇간)를 두었다. 이(二)익공식의 공포를 사용하였는데, 각 중앙 칸에는 기둥사이에도 1구씩의 익공을 두고 있다.

31일 보물로 지정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은 고종의 기로소 등재 기념물인데, 기소로는 장수한 임금을 등재시키는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다.

어첩(御帖)은 기로소에 보관하는 임금의 입사첩(入社帖, 생년월일, 입사 연원일, 어명, 아호 등을 기록)을 말한다. 익공은 기둥머리에서 상부하중을 받고 장식하는 공포의 한 형태이며, 이익공은 초각한 장식부재를 두 겹으로 둔 것을 뜻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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