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지시·관여’ 물증 제시는 못한 검찰…정황 증거 놓고 공방 치열할 듯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한 차례 구속영장 기각과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의견에도 검찰이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을 전격 기소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에 관해 직접 지시를 내리거나 현안을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점을 공소사실에 담지는 못했다. 향후 이 부회장의 개입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1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 공정했나…‘승계작업’ 다시 도마 위에

검찰은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을 임의로 조정했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돕기 위해 총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왜곡했다는 게 공소사실의 핵심이다.

삼성은 소위 ‘승계 작업’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이미 언급이 된 만큼 따로 입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보고 이 부회장을 기소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이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특히 2015년 6월 외국계 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7.12%를 보유하며 경영권 방어 문제가 떠올랐던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엘리엇이 지분 보유 사실을 공시하고, 33% 지분을 가진 해외 주주와 24% 지분을 보유한 소수·소액주주들의 입장이 불리한 것으로 파악되자 이 부회장이 직접 미래전략실과 함께 긴급 대응 전략을 수립하도록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재용 관여’ 직접 담지는 못해…자문 내역, 국정농단 사건 정황 증거 제시할 듯

하지만 이날 발표한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에는 이 부회장이 지시나 승인 여부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사실관계가 담기지는 않았다. 다만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장기간 승계 작업이 진행된 만큼 이 부회장의 승인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수년간 미국 골드먼삭스 본사 IB 부문 회장과 엘리엇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게 사실상 승계 작업 조언을 구한 정황이라고 제시했다. 반면 삼성은 외국계 자본 잠식에 따른 자문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승계 작업을 ‘현안’으로 언급하고 청탁을 했다는 국정농단 사건 내용도 다시 꺼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번 공소사실에서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 과정에서 움직이는 데에 이 부회장의 청탁으로 인한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삼성, ‘합병은 이재용 승계 및 지배력 강화와 무관’ 입장

이번 검찰이 제시한 공소사실 중 삼성 측이 예측하지 못한 ‘불의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그동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나 지배력 강화와는 무관하고, 오로지 양사의 경영상 필요를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실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최고경영자가 만나 합병을 추진했을 뿐, 이 부회장의 관여는 물론 미래전략실 관여가 없었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다. 실제 합병 시너지 창출로 올해 예상 매출액이 60조원에 달하고 순환출자구조를 개선해 지배구조가 단순화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고 주장한다. 합병비율 역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기업가치 평가 결과, 적정 합병비율 범위에 있었다는 점이 입증됐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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