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政 극한갈등 지속은 ‘학습효과’ 탓…“파업 장기화시 모두가 패배자”

[헤럴드경제=김대우 기자]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극한갈등이 의약분업 협상 등 과거 경험에서 얻은 ‘학습효과’ 때문에 더 길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의사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국민피해는 물론 의·정 모두 패배자가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일 오전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전공의가 정부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

2일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계의 의대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원점 재논의’ 주장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의하겠다”며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1주일 연기하는 등 사실상 한발더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젊은의사비상대책위원회’ 출범기자회견에서 “원점으로부터 재검토해달라”고 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파업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전공의들은 ‘원점 재논의’ 등을 합의문에 명문화할 것을 복귀조건으로 내세우고 정부는 명문화 요구에 대해 계속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협은 “정부는 ‘전면 재논의’라는 단어를 (합의문에) 쓸 수 없다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라는 모호한 정치적 수사만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수준의 합의문은 언제든 뒤엎을 수 있어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공의들이 문서화에 집착하는 것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협상때 정부와 합의내용을 문서로 남기지 않아 번복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구두합의로는 안된다는 것으로 체험한 ‘학습효과’로 풀이된다. 박지현 위원장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지킬 것이라는 문서가 필요하다”며 “(정부를) 믿고 현장으로 돌아가 환자를 보기 위한 약속이 필요하고, 이런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점 재논의 문서화를 꺼리고 있다. 이것 역시 학습효과다. 섣부른 합의문이 나중에 정책을 재추진하는데 두고두고 족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증원 방안 등은 정부 여당이 당정협의를 거쳐서 확정한 사안이다. 공공의대 설립은 그간 학계 및 정치권과 함께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던 사안이고,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같은 경우도 건정심에서 정식의결을 거친 사안인 만큼 단순히 의료계 반발을 이유로 백지화할 경우 법적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의사 수 증원 및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고, 의료계 파업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큰 것 역시 정부가 의사단체의 ‘명문화’ 요구를 전격 수용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이익집단의 요구에 끌려다니다 결국 정책을 백지화하는 모양새는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와 의료계 간 근본적인 입장차는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정부는 현 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보완 가능하나, 의사수 증원방향 자체를 철회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의료계는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재자도 없어 파업장기화가 우려된다. 정부와 전공의들 사이를 중재해 줄 의료계 원로의 역할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은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합세해 더욱 확산 양상이다.

한 보건 전문가는 “전공의들은 의사수 확대 철회요구가 환자들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는 집단진료 거부까지 강행할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것인지, 정부는 원점 재논의까지 포함해 제로베이스에서 한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엄중한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간 갈등으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결국 피해는 국민들이 보게되고 이렇게 되면 정부도 의료계도 결국은 모두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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