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넘치는데, 돈이 안돈다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 2분기 사상 최대 규모의 유동성 공급이 이뤄졌지만, 실물경제로의 유입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지만, 경기 불확실성 지속으로 기업들은 투자를 유보하고 가계는 소비를 연기함에 따라 돈이 유통되는 속도가 1분기의 역대 최저치를 한 번 더 경신했다. 사람으로 치면 혈(血)은 넘치나 맥(脈)이 점점 막혀가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2일 한국은행의 ‘2020년 2/4분기 국민소득’과 ‘2020년 6월말 통화 및 유동성’ 자료를 통대로 2분기 통화유통속도를 산출한 결과 0.61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이는 한은이 통화량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종전 최저치였던 1분기(0.64)보다 0.03 더 낮아졌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경제 활동에 얼마나 빈번히 사용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연 환산해 시중 통화 지표인 광의통화(M2)로 나눠 구한다.

상반기 M2(평잔)는 약 170조원(5.8%) 증가한 반면 가계, 기업, 정부 등의 주체들이 생산한 재화·서비스의 부가가치에 물가를 반영한 명목 GDP는 되레 12조4000억원(2.6%) 감소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데다가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민간 신용의 증가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이 떄문에 막대한 시중 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원활히 유입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미시적 정책노력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M2를 중앙은행이 실제 공급한 본원통화로 나는 통화승수(money multiplier)도 2분기 현재 14.85로 역대 최저다. 이는 한은은 본원통화 1원을 공급했을 때 이의 몇 배에 달하는 통화가 창출됐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돈의 생산력을 보여준다.

한은도 지난달 국회 업무보고에서 최근 협희통화(M1·본원통화에 현금성 예금을 더한 것) 증가율이 M2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는 추세를 주목하기도 했다. 통화 공급은 빠르게 이뤄진 반면 통화 창출 속도가 더딘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2분기 현재 M2는 전년동기대비 9.9%(약 278조원) 증가했지만, 본원통화는 같은 기간 15.7%(약 28조원) 증가했다. 은행 요구불예금은 이보다 높은 27%(약 58조원) 늘었다.

또 다른 ‘돈맥경화’ 지표인 예금회전율 역시 통계작성 후 최저로 떨어진 상태다. 한은에 따르면 2분기말 은행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은 월 17.1회를 기록, 해당 통계가 시작된 198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예금회전율은 일정 기간 기업과 가계가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정도를 보여준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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