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비전 2030’ 시작부터 ‘흔들’…“10년 후 큰 대가 치를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검찰이 기소를 강행하면서 삼성의 비메모리반도체 육성 비전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삼성의 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연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기소되면서 삼성의 경영 불확실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장기화할 사법 리스크에 정치권의 보험업법 개정 등까지 가중되며 삼성의 성장 동력 위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과의 무한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짙어지고 있다.

▶메모리 편식 사업구조 개선 검찰에 급제동=이 부회장 불구속 기소로 재계에서는 당장 오는 2030년까지를 목표로 한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한다.

삼성은 급격한 변동 사이클을 겪는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된 포트폴리오의 개선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익 변동성이 글로벌 IT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근본적인 취약점을 지닐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해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글로벌 점유율 2위를 기록 중인 파운드리 부문의 대도약을 노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사실상 삼성전자가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와 ‘파운드리 치킨게임’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 삼성이 3나노 공정 계획을 밝히자, TSMC는 최근 2나노 양산 계획을 발표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재계에선 양사의 경쟁전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기소되자 삼성이 비메모리 육성 전략에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분석한다.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며 의사결정 지연과 공백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 삼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기회 선점은 고사하고 자칫 기회 상실로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시스템반도체 비전 뿐 아니라 바이오와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장 등 대규모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 글로벌 인수합병(M&A) 등에서도 악영향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정부의 차세대 주력 성장산업인 ‘바이오’ 부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인도에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이 때문에 검찰이 ‘바이오 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정책 기조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M&A나 대규모 투자와 관련해서는 총수가 외부 전문가를 두루 만나며 직접 결단을 내려왔는데 사법리스크 장기화로 이제는 불가능해진 셈”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투자가 줄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겠지만 5년 후, 10년 후 삼성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민단체도 가세, 정치권 규제법안 발의…삼성 전방위 경영압박=정치권과 시민단체 또한 삼성을 향해 경영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삼성의 수세경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이 부회장 기소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 기소는 당연한 결정, 법의 심판을 받아야”의 논평을 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이날 논평에서 “엄중한 법적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심지어 민주노총 또한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법원은 죄질과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삼성의 노조 사건 처리 등에서도 사사건건 삼성의 발목을 잡으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법안을 개정 중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발행 채권과 주식이 총자산의 3%를 넘을 수 없도록 하는 요건에서, 3%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게 골자다. 보험업법 개정안이라지만, 사실상 삼성을 타깃으로 한 삼성생명법이다. 이 법에 영향을 받는 회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뿐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 주식 8.51%를 보유한 삼성생명은 약 23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화재 역시 약 3조원의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삼성생명과 화재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만 약 5조원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또한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대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코로나19로 경제위기 극복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기업인의 경영의지를 꺾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 진정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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