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K-바이오, 길을 묻다 ③ 글로벌 임상 경험은 ‘글쎄’] 임상 1~2상 끝나면 끝…“3상요? 돈도 시간도 겁나요”

“식약처의 최근 3년 임상시험 승인 현황을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이 진행되는 항암제의 경우 국내 제약사가 주도하는 글로벌 임상 3상은 단 1건 뿐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은 임상 1~2상만 마치고 기술수출에 성공해 주가만 올리는 것이 최고 목표로 보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임상시험 수준이 더 발전할 수 없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의견은 하나의 주장일 수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신약개발에 있어 임상시험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지만 한국은 임상시험에 있어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임상 경험 부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면 글로벌 제약강국이라는 목표는 현실이 아닌 꿈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약개발 필수 과정 ‘임상시험’…승인 건수 15년새 4.7배 증가=신약개발을 위한 단계는 크게 ‘비임상시험-임상 1상-임상 2상-임상 3상’의 4단계로 나뉜다. 여기에 신약이 승인된 뒤 부작용 사례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시판 후 조사’ 단계를 임상 4상으로 추가하기도 한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비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게 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1~3상을 진행하게 된다. 임상 1상에서는 소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고, 임상 2상에서는 1상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가장 적절한 약물 용량과 부작용 등의 이상사례를 수집한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통과하면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이 진행된다.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몇 만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임상 참가자는 인종이나 지역 등을 고려해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계획 승인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18년 임상시험계획 승인 건수는 679건으로 2017년의 658건과 비교해 3.2% 증가했다. 2002년 의약품 임상시험 승인 제도 도입 이후 2003년 143건에 불과하던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약 4.7배 증가했다. 이는 활발한 신약개발 추세와 더불어 국내 임상시험 역량이 꾸준히 향상된 결과로 분석된다.

▶임상 1상 가장 많아…임상 3상은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 주도=2018년 전체 임상시험 승인 건수 679건 중 제약사 등에서 실시하는 의약품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504건으로 74.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주로 학술 목적으로 수행하는 연구자 임상시험은 25.6%를 차지한다. 임상시험 대부분이 의약품 개발을 위한 상업화에 집중된 것이다.

2018년 제약사 임상시험 승인을 단계별로 보면 임상 1상 승인 건수가 211건이며, 임상 2상이 98건, 임상 3상이 188건이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임상 3상도 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대부분 글로벌제약사가 국내에서 실시하는 다국가 임상 3상인 경우가 많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제약사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수천억원의 비용이 필요한 글로벌 임상 3상을 자체 진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임상은 대부분 임상 1~2상에 몰려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한국의 신약개발 능력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임상 3상을 노크하는 단계”라며 “아직까지는 바이오 신약의 생태계를 한 바퀴 돌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선순환 만들어=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쉽사리 글로벌 임상 3상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임상 수행에 필요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신약개발 과정을 보면 5000개에서 1만개의 신약 후보물질 중 최종 임상시험을 통과하는 건 1~2개에 불과하다. 비임상을 거쳐 임상 1~3상의 모든 과정을 거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개발기간과 1조원 이상의 개발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전 세계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은 비용이 가장 많이 들고 오랜 기간이 걸리는 가장 어려운 단계에 해당한다. 임상 2상까지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임상 3상에 실패하거나 최초 기대했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약물도 적지 않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폐암치료제 ‘올리타’나 신라젠의 ‘펙사벡’ 등이 잘 알려진 예다. 이런 실패 사례는 매년 전 세계에서 수 차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제약사들이 지속적으로 대규모 임상 3상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자본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기업은 자본력에 더해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는 스위스제약사 로슈의 R&D 투자액은 2018년 기준 98억달러(11조6000억원)로 매출액의 22%에 해당한다. 반면 국내 제약기업들의 R&D 투자액은 지난 해 전체 상장사 합이 2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글로벌제약사가 R&D에 적극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신약개발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신약개발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제약사 한 곳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은 100~200개에 이른다. 이 중 대다수가 실패하더라도 하나의 성공 사례가 나오면 여기서 얻게된 이득이 다른 신약개발을 위한 종자돈으로 쓰이게 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글로벌제약사는 여러 후보물질 중 하나가 성공해 다른 후보물질의 실패로 인한 손해를 메꿔주고 다른 약물의 개발비로 사용된다”며 “이런 선순환이 잘 이뤄지기에 글로벌 임상 3상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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