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미남’ 구본수, 풍성한 ‘울림’으로 쓴 반전 드라마

‘팬텀싱어3’에 출연한 구본수는 프로그램 사상 유례없는 반응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최종 12인의 문턱에서 탈락한 이후 SNS를 들끓게 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의 탈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구본수는 자신의 목표는 “초원 베이스”였다며, “매일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이런 뜨거운 반응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이토록 화제가 된 ‘탈락자’는 없었다. 지난 6월 막을 내린 JTBC ‘팬텀싱어3’에 출연한 구본수(32)다. 승률 100%, 일찌감치 우승 후보로 점쳐진 ‘목소리 미남’ 구본수가 최종 12인을 뽑는 문턱에서 탈락자로 호명되던 날, 포털 사이트는 그의 이름으로 도배가 됐다. SNS도 들끓었다. 심사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고, 프로그램 폐지 청원까지 등장했다. 심사위원을 향한 거센 항의도 이어졌다. ‘팬텀싱어’ 사상 유례없는 반응이었다.

구본수는 SNS에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팬텀싱어’를 하는 동안 목표가 있었다면 동료를 살리는 것, 초원(같은) 베이스가 되는 것이었다”고, “함께 했던 동료들이 12인으로 하나하나 불릴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그제야 격렬했던 반응이 진정됐다. 그의 이름 앞엔 ‘비운의 주인공’ 대신 ‘초원 베이스’라는 수사도 붙게 됐다. 그는 “함께 노력한 친구들과 프로듀서들이 화살을 맞는게 속상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매일 기적 속에 살아가는 것처럼 이런 뜨거운 반응들이 실감이 나지 않아요.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수도 있구나, 감사한 마음이 커요.”

강렬한 ‘반전 드라마’를 쓴 구본수는 프로그램 종영 이후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 이전 단독 콘서트를 무사히 마쳤고, 학창시절 즐겨봤다는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구본수를 서울 후암동 헤럴드경제 사옥에서 만났다.

독일의 작은 시골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의 하늘은 온통 흐렸다. 작은 기숙사 방 안에서 구본수는 “해가 뜨지 않는 이곳에선 음악 말고는 할 게 없다”고 말했다. “나이는 점점 들고, 할 수 있는 건 점점 줄더라고요.”

낮은 목소리에 실린 간절함이 구본수의 첫인상이었다. ‘목소리 미남’이라는 별칭을 들고 나온 구본수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유령의 넘버 ‘밤의 노래(Music of the nights)’를 부르자, 심사위원들의 탄성에 탄식이 섞였다. 또 한 명의 실력자가 등장한 것에 대한 감탄과 심사의 괴로움이 교차된 감정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었다. 성악을 공부한 부모님은 아들의 진로를 극구 반대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3이 돼서야 성악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대학 입시를 치르기 위해 험난한 관문을 지났다. 유전자의 영향인지 ‘타고난 색깔’을 가진 목소리 덕에 성공적으로 첫 문턱을 넘었다. 고작 한 달 집중 레슨으로 부산대 음대에 07학번으로 합격.

“대학에 가서 좋긴 한데, 힘들더라고요. 예고를 나오거나 오래 음악을 한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아졌어요. 수업 때마다 백지 상태였거든요. 피아노를 치면 음표를 적어야 하는데, 전 그게 무슨 음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대학을 갔던 게 기적이었어요.”

일 년 휴학을 결정하고, 군대(공익근무요원)를 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 시간 동안 출퇴근하면서 레슨을 받으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11학번으로 재입학하며 어린 동기들과 같은 길을 걸었다.

성악과는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그렇기에 ‘팬텀싱어’ 출연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많이 망설였어요. 지금 ‘팬텀싱어’에 나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으면서도, 오디션 전날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어요. 클래식을 베이스로 하는 사람이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면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오가더라고요.”

설 자리가 부족하다는 어려움도 그를 ‘팬텀싱어’로 이끌었다. 걸출한 한국인 출신 성악가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해외 무대에서 동양인이 설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은 성악 강국이에요. 이렇게까지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실력파들이 유럽 극장을 휩쓸고 있어요. 독일만 해도 독일인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한국인이에요. 그만큼 숫자도 많고, 실력도 뛰어나지만, 설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 ‘팬텀싱어’는 단비같은 존재였죠.”

탄탄하고 풍성한 베이스로 어느 자리에서나 중심을 잡아줬던 구본수는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엔 맞지 않는 성향의 참가자였는지도 모른다. 본인이 돋보이기 보단 ‘조화’를 중시했고, 스스로 ‘초원’이 되길 자처했다. 오디션이 진행하는 동안, 이렇게나 욕심을 드러내지 않은 참가자도 처음이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 욕심은 방향이 달랐던 것 같아요. 방송을 보는 분들이 좀 더 좋은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음악적인 밸런스가 깨질 것 같은 부분에선 양보를 했고요. 그런데 제겐 양보를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어요.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욕심이요. 뒤에서 바라보고 서포트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팬텀싱어3’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성악가로의 존재감과 크로스오버 음악가로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목표도 걸어갈 길도 분명하지만, 그는 담담히 ‘음악인의 길’을 이야기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두보가 되기를 희망했다.

“클래식은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은 음악입니다. 조금이나마 클래식과 대중을 이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충실하게 해보고 싶어요. 전 그냥 옆집에 사는 평범한 청년이에요. 목소리가 좀 낮고, 성악을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요. 이웃처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렇게 음악하는 사람이 돼 보려고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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