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2년간 억울한 軍사건 1610건 접수…참여정부 때보다 2.5배 많아

군 장병들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14일 출범 2주년을 맞아 개최한 조사활동보고회에서 이날 기준 1610건을 접수해 450건은 종결, 703건은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조사 종결된 450건 중 진상규명으로 의결된 223건에 대해서는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 정부 기관에 순직 재심사, 제도 개선, 사망보상금 지급을 통한 구제 요청 등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위원회에 접수된 1610건은 군사망사고 관련 특별법 제정 당시 목표 예상건수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라며 "2006년부터 4년간 활동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 접수건수 600건에 비해서도 2.5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한 이날 군의 기록 실수나 사인 은폐에서 비롯된 억울한 사망, 군 초동 수사과정에서 축소·은폐로 인해 사인이 뒤바뀐 사망, 구타 및 가혹행위와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인한 자해사망, 군복무에 따른 스트레스로 급성 정신질환이 발병해 자해한 사망 등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1963년 사망한 황 병장은 이유 불상으로 총기 자살한 것으로 돼 있었으나, 위원회 조사결과 부대에서 2시간 거리인 사격장까지 이동해 자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점, 가설병은 사격장에서 총기 소지가 금지된 점, 배우자와 자녀 2명을 둔 가장인 점, 병장 진급 후 30일간 정기휴가를 보내고 복귀 3일만에 사망한 점 등을 들어 자해사망보다는 야간 사격훈련장에서 가설병으로 대기 중 오발된 총기에 의해 사고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1989년 사망한 유 상병의 경우 당시 군 수사기관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분대장의 부대운영에 불만을 품은 부대원 3명이 분대장에거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했다. 흥분한 유 상병이 총을 난사하며 분대장과 부대원 1명을 현장에서 살해하고, 생존한 부대원 1명과 도주하다 절취한 수류탄 2발 중 1발을 부대원에게 던지고 남은 1발로 자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조사 결과 당시 헌병대가 총기 감정을 하고도 결과를 누락시킨 점, 유일한 생존자인 부대원 진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점, 망인이 타살당했을 가능성은 무시한 점, 유족에게 시신을 공개하지 않고 매장한 점 등을 들어 수사에 축소·은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974년 사망한 김 일병의 경우, 1964년 탈영해 자녀를 낳고 결혼생활을 하다 12년이 지난 1974년 헌병대에 체포돼 유치장에 수감됐다. 그는 수감 다음날 구토 및 전신경련으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돼 응급수술을 받았고, 이틀 후 퇴출혈에 따른 뇌부종 및 호흡정지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군의관은 사망진단사에 '외인사'로 기재했으나, 군은 '병사'로 기재해 수감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관련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판단했다.

위원회는 국방부에서 순직으로 결정했지만, 유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사례, 변사 또는 병사로 잘못 기록해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한 사건, 규정상 해당 보직에 부적합한 병사를 배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등도 발표했다.

1957년 사망한 이 이병은 '결핵폐활동성중등도'로 사망 당시 병사로 처리됐다가 1997년 국방부의 변사 및 병사 기록 재분류 과정에서 순직처리됐지만 2008년에야 유족에게 순직 사실이 통지됐다. 위원회는 이로 인해 사망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와 유사한 사례도 많아 관련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1958년 사망한 김 이병은 '활동성 고도폐결핵'으로 군 복무 중 병사했음이 확실하나 사인을 알 수 없는 변사로 처리해 순직 인정을 못 받고 사망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또한 1997년 변사 및 병사 재심사 과정에서 누락됐다.

1961년 사망한 김 훈련병은 군입대 한 달 만에 훈련 중 열사병으로 심장기능에 장애가 생겨 병사했으나, 유족에게 충분한 사인 설명이 없었고, 사망 후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적절한 조치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고 위원회는 판단했다.

2003년 사망한 김 일병은 '병인사관리규정'과 달리 골절 후유증으로 왼팔을 완전히 펼 수 없지만 세탁물을 다루는 보직을 맡아 상급자의 폭억과 가혹행위 등에 노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1991년 사망한 이 이병은 말더듬장애가 있고 암기사항을 힘들어해 항공기식별요령 등 암기사항이 주요 업무인 방공포병대대에 적합하지 않았으나 해당 부대로 전입됐고, 괴롭힘 끝에 자해사망한 사실을 위원회는 확인했다.

위원회는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된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해 사망, 스트레스 및 과중한 업무 등에 의한 자해 사망 등의 사례도 발표했다.

2009년 사망한 홍 상병은 입대 50일만에 망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조현양상장애'로 진단됐다. 그러나 동기 폭행을 이유로 영창에 10일간 구금돼 정신증이 악화됐고, 결국 구금에서 풀려난 지 9일만에 자해 사망했다.

2014년 사망한 임 일병은 군복무에 따른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발생, 의병전역을 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출근해야 하는 첫 날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다. 임 일병은 정신질환으로 전역한 사람이 그 질환이 원인이 되어 자해 사망한 경우에도 순직이 인정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1953년 사망한 정 이병은 '휴가 중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으나,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대원의 부축을 받아 귀가 조치된 이후 6일 만에 사망해 참전 중 질병 악화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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