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관절로 연결되어서 움직임 만들 듯…기하학 구조가 유기체 구조로 변하는 순간

지니 서 개인전 ‘Her Sides of Us’ 전시 전경, 촬영 전병철. [갤러리바톤 제공]

평면이 입체가 되고, 입체는 다시 평면이 된다. 아이디어는 즉흥적으로 펼치고, 작업은 논리적으로 진행한다.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지니 서(Jinnie Seo·57)의 개인전 ‘허 사이즈 오브 어스’(Her sides of us)는 ‘순환’과 ‘완결’로 요약된다.

지니서는 2018년 인천 공항 제2터미널 3층에 설치한 ‘윙스 오브 비전’(Wings of Vision), 2013년 에르메스 도산공원 플래그십을 비롯 전국 주요매장 윈도우 디스플레이, 2019년 미국 팔로 알토 스탠포드 대학병원 내 예배당 페인팅 작품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뉴욕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 뉴욕대 회화 석사과정을 밟은 그는 구조와 관계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갤러리바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반기는 건 구리로 만들어진 구조물 ‘코퍼 오픈 큐브 스컬쳐’(Copper open cube sculptures)다. 뼈대만 남은 ‘벽’, 철망으로 만들어진 펜스 처럼도 보이는데 얇은 구리 빨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고, 그 안에 스테인레스 와이어를 넣어 완성한 구조물이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떨어지기에, 관객들은 그 사이를 마치 오솔길 지나가듯이 움직이며 감상하게 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갑자기 이 구조물 한 쪽 끝을 잡아 들어올렸다. 옛 선조들이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사용했던 ‘발’처럼 유연하게 접히며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저는 2D가 3D가 되고, 다시 3D가 2D가 되는 변화와 모션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아요” 마치 인간의 뼈가 관절로 연결되고 나서야 움직임을 만들어 내 듯, 그의 작품도 기하학적 구조가 유기체적 구조로 변한다.

구조물을 지나면 전시장 끝에 곡면으로 가공된 푸른색의 대형 우드패널 ‘아워 사이드 일루미네이티드’(Our Sides Illuminated (for My Father))와 마주한다. 지난해 스탠포드 대학병원 예배당에 설치한 페인팅 작품과 이어지는 시리즈다. 작가는 늘 교회와 병원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몸이 치유되고, 영혼이 치유되는 곳’이기 때문. “인간은 유기체이자 에너지다. 모두 영적인 빛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는 “사람들이 만나서 맺는 관계는 수학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1+1은 1이 아니라 무한대 일 수 있다”고 했다. 푸른 바탕에 그려진 방사선 모양의 직선들은 작가가 생각하는 영적 표상이자, 빛 혹은 무한히 확장하는 에너지로 읽힌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입구로 빠져나오면 다시 푸른색의 회화와 만난다. 마지막에 관람한 대형 우드패널 작업과 짝을 이룬다. 옛 한옥에서 바닥을 마감하기 위해 썼던 장판지에 작가가 ‘진실’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푸른색 물감을 먹였다. 장판지가 서로 겹치며 격자무늬가 드러난다.

전시장을 나오면 또 다른 전시장 블루바톤이 나온다. 외부로 난 커다란 창이 도로의 전경을 그대로 끌어들인다. 이곳엔 얇은 구리판을 가로로 여러번 자르고, 이를 휘거나 이어붙여 구조물로 만든 조각들이 전시됐다. 리본 띠 같기도 하고 동물의 늑골과 같은 구조물이다. 2017년 금호미술관에서 장판지로 선보인 작업의 연장선상이나, 재료를 구리로 바꿨다.

에르메스 윈도우 프로젝트와 달리 공간이 넓고 바깥 도로에서 봤을때 무대 같은 공간이라는 작가는 구성과 연출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구리라는 소재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표했다. “시간이 저의 콜라보레이션 상대다. 황동색이 햇볕과 공기와 만나며 보라색, 녹색으로 변해 다양한 빛을 연출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마음먹은 대로 작품이 나오진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조형하려 하다보면 오히려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로 수렴된다. 삶도 죽음도. 전시는 9월 29일까지.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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