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멱살 잡혀 제압했지만 벌금형 받은 소방관 “맞아도 참을 수밖에”

지난 6월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의 한 길가에서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던 50대 남성이 자신을 집에 데려다주려는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들이 출동해 확인 중이다. [연합]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지난 2018년 9월 19일 오후 7시께. 주취신고를 받고 전북 정읍시 한 초등학교 인근으로 출동한 소방관 A(34)씨는 B(68년생사망)씨의 허리를 안고 근처 세워져있던 트럭에 B씨가 기댈 수 있도록 밀어붙였다. B씨가 A씨의 몸통에 주먹질 하다 급기야 얼굴에까지 주먹질 하려는 듯 멱살까지 잡자 상황이 위험해졌다고 판단한 A씨는 B씨의 뒤로 가 제압했다.

15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A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사건이 벌어지던 현장을 묘사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으로 환자 분이 실제로 다쳤으니 제 잘못이 분명 있다”면서 “다만 패소한 제 선례가 남고 알려져 앞으로 소방관들이 폭력이나 법적 분쟁에 노출되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만취한 채로 30여 분간 소방관과 경찰관을 불러 난동을 피운 취객을 제압한 소방관 A씨는 이 사건으로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4일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는 상해 혐의로 기소된 백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30여분간 복귀와 재출동을 끝에 B씨가 점점 격앙되고 상황이 위험해졌다고 판단한 A씨는 물리적 제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 신고에서 B씨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자 경찰 입회 하에 철수했다 보호자의 재신고로 현장에 돌아왔다. A씨가 “머리가 어지럽냐”라고 물으며 물을 떠다주는 등 술을 깨우려 시도해도 B씨는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고 수군거리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A씨는 손을 사용하면 형사사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생각에 주먹이 날아와도 손을 대지 않고 B씨를 끌어안으려 노력했다.

B씨는 이 사건으로 복숭아뼈에 금이 가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고, 피해를 입은 B씨의 가족은 A씨를 상해, 공문서위조, 직무유기,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상해 혐의는 약식기소로 벌금 100만원형이, 그외 혐의는 무혐의 처분이 났다. 그러나 B씨 가족이 벌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탄원서 제출하며 정식 재판으로 가게 됐다.

소방관이 환자를 이송하던 중 벌어진 충돌로 재판에 넘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A씨 측의 요청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검찰은 30여분의 영상 중 A씨가 B씨를 제압하는 장면만 반복해 보여주며 5대2로 배심원들의 유죄 판단을 이끌어냈다.

A씨는 2심에 와서 상해 혐의를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은 당연퇴직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A씨는 “가정도 있고 직이 걸려있던 사안이다 보니 한 달 정도 고민하다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고 변호사에게 말했다”고 털어놨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이한명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재판부가 금고 이상의 형을 고려한다는 암시를 재판 초반부터 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결과가 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취객이 주먹 휘둘러서 제압한 소방관 억울하죠’ 등 2건의 청원이 올라왔으나 이에 동의한 시민은 각 1000명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소방관이 주취 등 민원인을 대응할 때에 보호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주취 신고가 들어오면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신고 접수한 대로 무작위로 출동하지만 소방관에게는 주취자를 제압할 권한이 없다”며 “경찰관은 주취자를 제압할 수 있고 주취자가 불응하면 오히려 공무집행방해가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도 “검사 측이 재판 과정에서 경찰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제압행동 되냐고 문제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소방관들은 기댈 수 있는 건 형법 제21조 ‘정당방위’뿐이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A씨는 “뒷짐을 진 채로 맞은 게 아니라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더라”며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혈압이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등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갈 수밖에 없어 폭력이나 폭언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말리면 쌍방(과실)이 된다”고 말했다.

법적 근거가 약한 데다 혐의를 인정한 상황이라 이 변호사는 형사재판보다 ‘입법촉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소방관들이 주취 신고에서 욕설, 폭행 등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보호할 법안이 없었다”며 “주취 신고는 경찰이 무조건 초동대응한다거나 소방관 중에 특수사법경찰관을 만드는 등의 방식 등을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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