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억제책은 ‘부자 억누르기’

부동산 투자를 ‘불로소득’을 위한 투기로 규정, 국민에 ‘세금폭탄’을 던졌던 정부가 신용대출 증가세에도 비슷한 처방을 준비 중이다. 부자들의 이자부담을 높여 대출을 억제시키려는 의도다. ‘빈틈’을 없애기 위해 은행들의 금리경쟁에도 제동을 걸 태세다. 경쟁보다는 ‘공동’ 대응, 일종의 ‘담합’을 주문하는 방향이다.

금융감독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 주재로 14일 열린 화상회의에는 시중 주요 5대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카카오뱅크 여신담당 임원이 참석했다. 급증하는 신용대출에 제동을 걸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신용대출은 빌린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확인이 어렵다. 설령 대출 받을 때 용처를 밝혔더라도 이를 확인하거나, 다른 곳에 썼다고 처벌할 수단도 없다. 그래서 이날 나온 아이디어는 ‘고액 신용대출’ 일반에 대한 금리를 높여 수요를 줄이는 쪽이다.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이 아닌 부동산·주식투자만 막기 위해 고신용등급, 즉 부자와 고소득자를 규제하려는 의도다.

현행법상 금융당국이 직접 금리를 건드릴 수는 없다. 대신 은행들에 ‘자율적으로’ 방안을 내놓을 것을 ‘당부’했다. 은행도 공감을 표했다. 금융당국이 사실상 ‘대출금리 인상’을 용인하겠다고 밝힌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상품 가격’을 올릴 명분이 확보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대출 금리는 높이고 한도는 줄이되 그 대상은 큰 고신용등급자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자세한 사항은 은행들로부터 계획을 받아본 이후 확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대출이자는 조달금리(코픽스·Cofix)에 신용원가 등 가산금리가 추가돼 결정된다.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위험비용이 낮아져 값이 싸진다. 한국신용정보원이 지난 2018년 12월 집계한 신용등급 1등급자의 불량률(연체율)은 0.06%, 2등급자의 불량률은 0.20%에 불과했다. 등급 하위 구간인 9등급(14.48%)과 10등급(37.04%)은 매우 높은 불량률을 기록했다. 고신용등급자에 받는 이자율을 높이면 은행은 마진이 개선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문제는 두 가지다. 고신용등급자들의 대출수요 자체를 줄일 만큼 은행이 금리를 올리느냐다.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고소득·자산가들의 체감 차입부담을 높이려면 상당한 폭으로 올려야 한다. 우대금리를 없애거나 가산금리를 조금 더 붙이는 수준으로는 수요억제보다 오히려 은행 이자수익만 늘려줄 수 있다.

한도를 낮추는 방법도 부작용은 있다. 한도를 낮추면 한도에 맞춰 “일단 빌리고 보자”는 가수요를 총발할 가능성이 크다. 마이너스통장도 일단 최대 한도로 설정해 둘 수 있다.

저금리에서 ‘돈의 값’ 즉 이자율이 싸지면 대출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신용대출 급증은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면서 주담대를 억누른 탓과, 부동산 대신 증시 활황을 부추긴 탓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은행권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신용대출 금리(1.74~3.76%)가 주담대 금리(2.03~4.27%)보다 낮아지는 기현상마저 나왔다. 지난해 12월 부동산 수요 억제 정책으로 정부가 ‘돈줄 죄기’ 작전에 돌입한 지 8개월 만의 일이다.

특정 계층의 대출수요를 강제로 누르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칫 위험과 반비례해 가격이 매겨지는 시장경제 금리시장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도 제기된다.

홍석희·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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