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나훈아를 통해본 연예인 존재감 높이는 법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추석 연휴 전국민적 화제가 된 나훈아는 국민 뿐만 아니라 연예인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신비주의'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다양한 의미를 담고있다. 적어도 나훈아에게서 존재감, 스타성, 아우라, 카리스마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은 얻을 수 있다.

우선, 연예인이 여기저기 불러준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건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연예 활동 초기에는 불러주는 곳마다 가야겠지만, 따지지 않고 여기저기 출연하다가는 어느 순간 불러주지 않는다.

제작자는 자신의 콘텐츠에서 연예인을 필요할 때까지만 소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작을 해도 쓰임새가 확실히 있는 곳을 찾아다니거나 스스로 필요있는 캐릭터가 되면 문제가 없지만, 별 소용이 없는 곳에 자꾸 나오는 것은 마이너스다. 나훈아는 북한과 삼성에서 불러도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으면 가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 연예인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조금 비싸게 굴 필요가 있다. 이는 까다롭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철저한 고집이라는 의미와 더 가깝다. 자주 공연을 열지는 않지만 한번 열면 무대, 음악, 기획 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가수중에는 콘서트를 자주 열지는 않지만 한번 열면 팬들이 티켓팅을 하려고 학수고대하는 가수가 있다. 김동률, 이승환, 박효신 등이다. 이들은 무대에 열정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입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보장돼 팬들이 믿고 보게 된다. 가수의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이런 것들로 만들어진다.

나훈아는 그런 가수들중에서 대표적인 존재다. 콘서트를 3년만에 한 번 여는 게 아니라, 10년, 15년에 한 번 연다. 이 한 번의 공연으로 10년간 그의 이미지와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고 소비된다.

나훈아는 카리스마는 엄청나지만, 공연에서 관객(언택트)과 소통하는 방식은 지극히 서민적이다. 소통의 대가답다. “뭐가 비야(보여야) 하지” “천지 삐까리(많다는 부산 사투리)인기라” 등의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친서민 성향을 보인다.

나훈아는 원래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내용의 트로트를 많이 불렀다. 그의 노래중 대표적인 키워드인 ‘고향’은 70년대 개발독재시대 시골에서 돈 벌기 위해 상경해 도시빈민으로 살고 있던 누나들의 심금을 자극했다.

공연의 질을 결정하는 첫번째 요인은 가수의 노래다. 하지만 노래와 노래 사이의 토크도 중요하다. 노래와 노래의 이음새 역할을 한다. 나훈아의 멘트는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사람 사는 얘기부터 사회 현실에 대한 이야기,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이 깃든 코멘트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개성적이고 함축적이다.

이렇게 2시간 반 동안의 공연으로 ‘나훈아 유니버스’가 구축됐다. 아버지의 묘소앞에서 먼저가본 저세상과 세월의 힘듦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묻는다. 요즘 테스형, 맑스형 등을 부르는 게 유행이다. 다음 번에 공연할 때는 "테스 형 하고 불렀더니 저를 나크라테스라고 하데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BTS가 노래 만이 아니라 가사와 SNS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던져 ‘BTS 유니버스(세계관)’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앞서가는 가수라고 보면 나훈아는 이미 그런 세계관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다.

혹자는 나훈아 신드롬을 어른 부재 시대의 어른, 권위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도 분석했다.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 드문 현실이라 그럴만하다.

“세월에 끌려가면 안되고 우리가 멱살 잡고 하고싶은 것 하며 끌고가야 한다” “세월이 빨리 안가게 하려면 안해본 것도 해보는 것이다” 등 인생선배로서 했던 말에는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더불어 나훈아 공연을 방송한 KBS도 지상파의 위기에서 모처럼 위너가 됐다. 유튜브와 OTT의 공격속에 지상파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한 수 가르쳐주었다. ‘나훈아 스페셜-15년만의 외출’ 마지막에 나훈아를 인터뷰한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은 기자에게 “(나훈아)선생님께 많이 배웠다”고 했다.

나훈아 공연은 연예인에게는 존재감과 스타성을 높이는 방법을, 지상파에게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각각 알려준 사례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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