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27년 창조경영…주가 50배·시총 500배 신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했던 모습. [삼성전자 제공]

[헤럴드경제 천예선 기자]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를 이끈 27년간 주가는 50배, 시가총액은 500배 늘어났다.

25일 삼성전자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1987년 11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 삼성전자의 주가는 2만7000원대였다. 시가총액도 4000억원대로 국내 증시 시총 순위는 한국통신, 포항제철(현 포스코) 등에 밀려 10위권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와병에 들었던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133만5000원, 시총은 196조6446억원(2014년 5월 9일 종가 기준)에 이르렀다.

실적에서는 1987년 연간 매출은 2조3813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1127억원, 345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2014년에는 연결기준 연간 매출 206조2060억원, 영업이익 25조251억원, 순이익 23조3944억원을 달성했다. 1987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86.6배, 영업이익은 222.1배, 순이익은 678.1배로 성장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원동력은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사업 진출에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경영 일선에 나서기 이전인 이미 1974년 한국반도체를 사재로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취임 직후인 1988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삼성전자에 합병시킨 것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성장을 지속했다. 삼성전자 주가도 1994년 5만원, 1995년 10만원을 각각 돌파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휴대전화 시장 개척에 착수했다. 1994년 첫 휴대전화 출시 이후 품질 문제 등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모아 불에 태우는 충격적인 '화형식'을 진행하며 품질 개선을 이끌었다.

그 결과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그해 국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이후 반도체와 함께 삼성전자를 떠받드는 양대 기둥으로 발전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2007년 첫 출시된 애플 아이폰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다.

삼성전자는 특별검사 수사로 경영에서 한때 물러났던 이 회장이 2010년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면서 그룹 역량을 총 결집한 '갤럭시S'를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본격 추격에 나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주가도 치솟아 2011년 1월 사상 처음으로 100만원을 돌파했다. 이어 갤럭시S2로 2011년 3분기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판매량 1위에 오른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상승세를 타 2012년 12월 150만원까지 치솟았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5월 4일 주식 1주를 50주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액면분할 직전 265만원이었던 삼성전자의 주가는 5만3000원으로 낮아졌다. 소액주주 수도 지난해 말 기준 56만8313명으로 대폭 늘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23일 종가 기준 6만100원, 시총은 359조3809억원이었다.

실적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구가하던 2018년 연간 매출 243조7700억원, 영업이익 58조89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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