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타계] 대한민국 사회공헌 시작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의 또 다른 사명으로 삼고, 이를 앞장서 실천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지난 2011년 7월 삼성전자가 개최한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해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삼성 제공]

[헤럴드경제 김현일 기자] “소외된 이웃에 눈을 돌리고 따뜻한 정(情)과 믿음이 흐르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선도기업인 우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001년 1월 삼성그룹 신년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았다.

1994년 출범시킨 삼성사회봉사단이 대표적이다. 삼성사회봉사단은 전 세계 기업 중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지금까지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동물을 활용한 사회공헌 역시 삼성에서 시작됐다. 삼성화재는 지난 1995년 맹인들의 눈 역할을 하는 맹인 안내견 사업에 본격 나섰다. 지금도 삼성맹인안내견학교를 운영하며 안내견을 지속적으로 양성 중이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사회공헌에 대한 인식은 대한민국 경제가 위기를 겪던 시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차례 언급하며 삼성그룹을 넘어 재계에까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IMF 외환위기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지난 2002년 5월 이 회장은 금융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모아 "이익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책임 있는 자세와 역할을 주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풍이 한 차례 쓸고 간 2010년 5월에도 이 회장은 반도체16라인 기공식에서 "세계경제가 불확실하고 경영여건의 변화도 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시기에 투자를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동반성장'과 '상생'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이 회장은 협력회사를 '삼성 가족'이라고 지칭하며 '공존'과 '공생'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삼성에서 '거래처', '납품업체', '하청업체' 같은 용어가 사라진 것도 이 회장의 이 같은 인식이 바탕이 됐다.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쓰도록 하며 모두가 '삼성 가족'임을 각인시켰다.

이 회장의 동반성장을 향한 의지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1988년이다. 회장 취임 이듬해였던 당시 삼성은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중소기업에 단계적으로 넘겨주기로 결정해 화제가 됐다.

이 회장은 1989년 1월 신년사에서 "협력사에 인격적인 대우와 적극적인 지원으로 한 가족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며 "이로써 참된 공존공영을 이룩하는 것 또한 인간중시 경영의 하나라고 믿고 있다"고 역설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에도 "작게는 삼성의 발전을 위해, 크게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위해 협력업체 육성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대부분이 양산 조립을 하고 있는데 이 업의 개념은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모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동반성장의 의지를 확고히 했다.

이 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채용과 인사제도에서도 불합리한 차별을 타파하며 사회적 혁신을 가속화했다.

그는 1995년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줘야 한다.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이라며 대졸 공채제도를 앞장서 폐지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여성 인재채용에서 일어났다. 1992년 4월 여성전문직제 도입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소프트웨어직군에서 100명의 우수 여성인력을 공개 채용하며 여성 전문직제를 확대했다.

신경영 이후 1993년 하반기 대졸사원 공채에서 여성 전문인력 500명을 선발하며 대규모 여성인력 채용을 본격화했다.

여성 인재를 중요시한 이 회장의 생각은 자서전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 여성이 지닌 잠재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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