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에 좌불안석 기업 임원들…급속한 세대교체에 대규모 감축까지

[사진제공=123rf]

[헤럴드경제=정순식·신소연 기자] 대한민국 직장인들 중 단 1%만이 달 수 있는 ‘별’. 임원이다. 직장 생활을 20여년 이상 하면서 입사 동기들은 물론, 선·후배들과 벌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가져갈 수 있는 ‘챔피언 벨트’ 같은 것이 바로 임원이다. 회사에 뼈를 묻겠노라 한길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그 누구보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런 이들이 요즘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거세게 불어대는 연말 ‘인사 삭풍’에 대한 불안감과 체감도는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해도 직급 승진 연한인 3~5년 정도는 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승진 연한이 2년 내외로 줄어들고 있다. 부사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마저도 없다. 매년 성과 평가에 따라 자리 보전 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연소 타이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주위의 부러움을 받았던 젊은 임원이 불과 1년만에 짐을 싸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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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겨울은 유독 매섭다고 임원들은 입을 모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다 실적 악화까지 겹쳤다. 여기에 재계가 2~3세대로 재편되면서 세대교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임원들을 불면의 밤으로 몰아 넣고 있다.

A그룹 한 임원은 “30대 임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로 세대교체는 빨라지고 있고, 각 기업마다 위기감이 팽배하다 보니 임원 수 먼저 줄여 조직에 긴장감과 변화를 주려는 경우도 있다”며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토로하는 임원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실제, 롯데그룹은 지난 26일 롯데지주를 비롯한 35개 계열사 임원 인사를 한 번에 단행하면서 임원 중 30% 이상을 교체했다. 계열사 별로 임원 3명 중 1명 꼴로 자리를 옮기거나 짐을 쌌다는 뜻이다. 빈 자리에 신규 임원은 10% 정도 밖에 선임하지 않아 임원 수가 20%나 줄었다. 롯데 내부적으로는 600여개의 임원 자리 중 100여개 이상이 이번 인사를 통해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유통, 식품 등 계열사의 임원 수가 대폭 줄었다. 롯데백화점에서 10여명의 임원이 짐을 싸는 등 롯데쇼핑에서만 20명 이상의 임원 자리가 사라졌다. 식품 및 호텔 쪽 계열사에서도 2~4명의 자리가 새로 선임되지 않았다.

한 달여 앞서 연말 인사를 단행한 이마트 역시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푸드, 신세계I&C 등 주요 계열사 대표를 교체한데 이어 100명이 넘던 임원 수도 10%가량 줄였다. 특히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가 그룹의 온라인 사업을 총괄하는 SSG닷컴 대표이사까지 겸직하는 등 계열사 대표 자리도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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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불고 있는 ‘세대 교체론’도 임원들을 좌불안석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임원들은 보통 20대 중·후반에 입사해 첫 임원을 다는 평균 나이가 49.6세다. 하지만 올해 연말 인사에서 발탁된 임원들 연령대는 40대 중·후반, 대표이사급도 50대 초·중반 등으로 연령대가 낮아졌다. 그만큼 기존 임원들의 재직 기간은 짧아질 수 밖에 없다. 한국CXO연구소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 임원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5년6개월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안정 속 혁신’을 모토로 국내 대기업 중 상대적으로 ‘덜 독한(?)’ 연말인사를 했던 LG그룹도 젊은 피 수혈에는 적극적이었다. 올해 신규 선임한 124명의 상무 중 45세 이하가 24명이다 됐다. 지난 9월 가장 먼저 인사를 단행한 한화그룹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령이 58.1세에서 55.7세로 2세 이상 낮아졌다. 이번 인사에서 대표이사 및 단위 조직장으로 보임된 7명의 롯데그룹 인사들도 모두 나이가 50~52세로 50대 초반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올 연말 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임원이라도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다. 코로나와 같은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가 나타나 자신의 업무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자신도 옆 방에 있던 동료 임원처럼 언제든 짐을 싸야 해야하기 때문이다.

5대 그룹사의 임원인 A씨는 “올해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다”며 “‘임원=임시직원’이라는 우스겟소리가 올해처럼 피부로 와닿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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