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애런 추모 물결…“차별 깨고 미소”

[헤럴드경제=김성진 선임기자] 가난과 차별을 극복한 ‘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별세한 23일부터 24일까지 미국은 물론 세계 전역의 추모 물결로 넘겼다.

그는 1982년 한국을 두차례 방문한 적 있으며, 국내 팬들도 많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홈구장 주변에는 미국 국민들의 헌화가 줄을 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에런이 베이스를 돌 때, (야구) 기록만 좇지 않았다. 에런은 편견의 벽을 깨는 게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에런은 미국의 영웅이었다”라고 썼다.

에런은 195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76년까지 선수로 뛰었다. 그는 3298경기에 출전해 1만2364타수 3771안타(타율 0.305), 755홈런, 2297타점, 240도루를 기록했다. 본즈가 금지약물 복용 파동을 겪은 뒤, 많은 이들이 에런을 ‘진짜 홈런왕’이라고 부른다. 타점 부문에서는 에런이 여전히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1위에 올라 있다.

 

행크아론의 2013년 모습[로이터연합]

개인 통산 762홈런을 치며 에런의 개인 통산 홈런 기록(755개)을 넘어선 배리 본즈(47)는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에런은 매우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그는 상징이자 전설, 진정한 영웅이었다”면서 “아프리칸 아메리칸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로 했다. 아시아 홈런킹 왕정치도 애도와 존경의 뜻을 전했다.

마이크 트라우트(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는 “애런을 보며 ‘경기장 안팎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늘 전설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MLB닷컴은 “에런은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한 인물”이라고 고인의 삶을 돌아봤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애런은 모든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오른 대단한 선수다. 기록상으로도 대단하지만, 그의 인성과 진실성은 더 대단했다”며 “에런은 야구에 상징적인 존재였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야구 역사에서 늘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행크 애런은 1982년 태동한 한국야구에도 귀한 조언을 했다. 1982년 미국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부사장이던 애런은 8월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에 왔다. 그해 10월에는 애틀랜타 산하 마이너리그팀을 이끌고 다시 한국을 찾아, 삼성, OB 베어스 등과 7차례 친선 경기를 했다.

애런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내 신체 중 손목과 팔은 남보다 강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훈련 외에는 홈런왕이 된 특별한 비결이 없다”며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슬럼프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훈련하며 극복할 수 있다. 주심의 볼 판정이 불만스러워도 ‘심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정리된다”고 했다.

행크아론이 1974년 4월8일 715번째 홈런을 친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AP연합]

아시아의 홈런왕 왕정치(81)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 회장은 성명을 통해 “에런은 홈런, 타점 등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대단한 선수였다. 굉장한 신사이기도 해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거울이 됐다”며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두 번 맞붙었는데, 모두 애런이 이겼다. 1974년 도쿄에서 열린 대결에서 애런은 홈런 10개를 쳐, 9개의 오 회장을 눌렀다. 은퇴한 뒤인 1984년에 재격돌했을 때도 홈런 4개로 2홈런에 그친 오 회장을 제쳤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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