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연의 현장에서] ‘룰’ 없는 청소년 대출·송금 사각지대

# “네 20만원을 23만원으로 불려줄게.” 서울에 거주하는 한 중학생 학부모는 최근 아들의 스마트폰을 봤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수중 현금 50만원 중 20만원이 사라졌는데 아이는 그 돈을 아는 형에게 빌려준 것이다. 스마트폰에는 아는 형이 “돈을 불려준다”고 이야기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직 금융 관념이 형성되지 않은 미성년자에게 ‘소액’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는 ‘돈놀이’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이자라는 개념 대신 “불려준다”는 말로 변형돼 청소년들을 유혹에 빠지게 하는 셈이다.

돈을 빌려줄 테니 사례비를 달라, 늦었으니 지각비를 내라며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자행하는 대리입금업자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금감원에 2019년 6월부터 지난해 7월 초까지 해당 건에 대해 들어온 제보만 2100건에 달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해당 수치를 발표하면서 이런 행위가 연 1000%가 넘는 고금리 소액사채나 다름없다며 주의를 요했지만 이 같은 경고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듯하다.

청소년 대리입금에 대해서는 21대 국회에서도 2건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해 내놓은 법안에는 개인 간 거래금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에도 연간 이자 제한 적용 대상에 포함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청소년 간 벌어지는 이른바 고이율 ‘대리입금’에는 여야 막론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나타난 간편해진 송금 세상에 미성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현재 미성년자들의 간편송금 한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액 대리입금이나 돈을 불려주겠다는 액수의 규모가 언제든지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다. 현금 거래보다 기록이 남는 송금이 더 안전하다는 반박도 있지만 오히려 돈을 주고받았다는 증거를 남길 수 있어 오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간편송금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미성년자 송금액에 한도를 부여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버페이는 1회, 1일 45만원 한도만 설정하고 있는데 한 달로 환산하면 최대 1300여만원이 된다. 카카오뱅크 미니는 한 달 기준 200만원을 송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따로 규정은 없는 상황이라 상향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실제로 토스는 지난 14일부터 1회 50만원, 1일 100만원, 한달 기준 200만원으로 미성년자 송금 한도를 올렸다.

금융위는 미성년자 간편송금 한도에 대해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문제나 이슈가 크게 없어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추후 검토는 해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청소년 돈놀이를 방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제도가 아니라 금융교육의 일상화일 테다. 하지만 교육 자체는 긴 시간이 소요되게 마련이다. 교육을 받는 것과 그 내용이 내재화되는 것은 또 다른 얘기기도 하다. 교육 이전에 금융 당국 차원에서 청소년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사건들을 가벼이 보지 않고 개선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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